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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생각저런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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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양심
2008/06/14 오후 4:18 | 이런생각저런생각

오마이 뉴스의 좋은 읽을 거리를 퍼왔습니다.

법과 양심 참 어려운 문제지만

곰곰히 읽어보니깐 답은 명쾌해지는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사람사는 공간에서
헌법 정신과 개인의 양심이 최대한 존중받고 실현되는
삶의 현장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우리 시대의 '서강대녀'를 뛰어넘는 방법

[오마이뉴스] 2008년 06월 14일(토) 오후 12:01
  가|  
[오마이뉴스 임재성 기자]전투경찰로 복무중인 한 이모씨가 "촛불 시위 진압에 나서는 것은 양심에 반한다"는 것을 이유로 행정심판을 제기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은 후 촛불로서 상징되는 지금의 저항운동이 근본적인 물음 앞까지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국가의 법과 개인의 양심이 충돌한다면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13일 새벽까지 이어진 MBC 100분 토론에서 한 발언으로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서강대녀'의 논지 역시 이러한 맥락이었다. '다양한 생각이 있을 수 있을 수 있지만 불법집회는 안된다'는 그 학생의 내용은 빈곤했지만 논리는 명쾌했다. '어쨌든 법은 지켜야 한다'는 논리다. 많은 이들이 이 학생을 비판하지만 사실 그 학생의 논리에 대한 명확한 반박은 보기 어렵다.


6월 10일 이후 촛불집회가 주춤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의 촛불집회는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이 진화해 나가고 있다. 광우병 쇠고기 반대에서 시작된 흐름은 이제 KBS와 MBC방송국 앞까지 갔던 촛불집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듯 언론의 공정성과 독립성에 대한 문제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희생을 감소하고서라도 자신의 양심을 지키겠다는 한 젊은이를 통해서 더욱 근본적인 문제를 두드리게 되었다.


전·의경 제도에 대한 문제제기를 넘어서서


미국산쇠고기 전면 수입개방 반대 72시간 릴레이 촛불문화제 삼일째인 7일 새벽 새문안교회 뒤쪽에서 한 전경이 시민들과 몸싸움을 하던 도중 부상을 당해 119구급대원에게 옮겨지고 있다.
유성호

이 모씨는 육군 전환을 요청함과 함께 전투경찰 근무 기록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 그로 인해 1년 4개월여의 복무가 무효가 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또한 전경제도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 역시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보수신문에서는 이씨가 최연소 민주노동당 대의원을 지냈고, 경찰의 설명을 인용해 이씨가 촛불집회에 한 차례도 투입된 적이 없다고 보도했지만 이는 논란의 핵심은 아니다.)


대간첩작전에 투입된다는 명분으로 박정희 정권 시절 시작된 전투경찰제도는 사실상 군사독재시절, 정권안정을 위한 인력을 확충하기 위한 편법으로 지금까지 많은 논란이 되어왔다. 월급주고 경찰에게 맡겨야 할 일을 간첩 잡는다는 명분으로 입영한 젊은이들에게 시키고, 그것도 간첩과는 전혀 상관없는, 민간인을 마주하는 시위진압을 군인들이 하고 있으니 그 논란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황은 경찰의 과잉폭력에 대한 원인으로 지적받아왔고, 인권단체들은 오래전부터 전·의경제도의 폐지를 주장해왔다. 결국 지난 노무현 정부는 누더기 대체복무제를 정비하면서 2012년까지 전·의경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명박 정권에서 임명된 어청수 경찰청장은 올해 2월 취임사에서 전·의경 2만 명을 존치하는 방향으로 갈 방침이라 밝혔다.


많은 언론에서 이씨의 주장을 다루는 관점은 이러한 전투경찰제도의 모순에 방점이 찍혀있다. 물론 이씨는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훈련소에서 전투경찰로 착출되었으며, 자신이 전투경찰로서 복무하는 일들이 현재의 전투경찰대설치법에서 규정한 임무에 부합하지 않음을 근거로 육군으로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 사안을 전투경찰제도의 문제만으로 접근하는 것은 보다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양심과 법의 충돌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충돌은 비단 이 젊은이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촛불을 들고 거리에 있는 우리의 비폭력 직접행동 역시 이 문제의 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전경들도 함께 해요"...선택적 병역거부를 권유했던 우리들


촛불집회에서 "경찰은 적이 아닙니다, 때리거나 욕하지 맙시다!"라는 외침이 지나고 나면 여기저기서 이런 구호들이 이어진다.


"전경들도 함께 해요."


"방패놓고 나와서 같이 촛불 들자!"


"전·의경도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미국산쇠고기 전면 수입개방 반대 72시간 릴레이 촛불문화제 삼일째인 7일 새벽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를 마친뒤 새문안교회 뒤쪽에서 경찰들과 대치를 벌이던 한 시민이 전경대원에게 오이를 건네주고 있다.
ⓒ 유성호

우리는 사실 그들에게 '선택적' 병역거부를 권했던 것이다. 병역거부 하면 여전히 분위기 싸한 대한민국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법과 양심의 충돌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사례가 바로 양심적 병역거부이다. 병역거부자들은 법의 개선을 간절하게 바라지만, 법과 양심이 충돌한다면 스스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감옥행을 택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것처럼 병역거부자들이 모두 '무슨 일이 있어도' 총을 들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훨씬 많은 이들이 이러한 '절대적'인 신념이 아닌 구체적인 상황에서 '선택적'으로 병역거부를 택해왔다.


미국의 베트남전 반대 운동은 징집거부로 대표될 수 있는데, 수많은 젊은이들이 베트남을 침공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군인이 되는 것을 거부하겠다며 망명을 하거나 감옥에 갔다. 그 중 유명한 이가 권투선수인 무하마드 알리이다. 이러한 모습은 현재 이라크에서도 이어지는데, 많은 미군들이 이 전쟁은 침략전쟁이기에 본국으로 송환을 요구하거나 제대신청, 탈영 등의 방법으로 저항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군인들 역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군사작전 수행 명령을 거부하고 감옥에 가기도 한다. 이들은 군복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에서의 명령이나 군복무를 거부하는 것이기에 '선택적 병역거부자'라고 지칭된다.


한 전투경찰이 거리에 있는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행동이 옳으며 그것을 진압하는 것이 자신의 양심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행위라면 느낀다면 그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그가 국가공무원이라면, 혹은 용역회사의 직원이라면 그 일을 그만 두면 될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징집된 군인은 다르다. 국가가 개인을 규율하고 동원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기만, 자신의 신체와 모든 행위가 명령에 의해 지배되는 가장 억압적이고 상태가 바로 군인이기 때문에 그러한 거부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군인으로서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가 인간 본연의 양심과 충돌할 가능성이 크기에 오랜 인류 역사에서 그러한 명령과 폭력에 반대하는 병역거부자들이 존재해왔다.


2003년 겨울, 이라크 파병이 결정된 이후 나라를 지켜야할 군대가 남의 나라 침략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당시 이등병의 신분으로 휴가를 나와서 복귀를 거부하고 결국 감옥에 수감되었던 강철민씨의 사례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위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촛불시위 앞에서 자신의 양심에 따라 명령을 거부하는 한 젊은이를 만나게 되었다.


이는 결국 '까라면 까야'된다는 군인이 자신의 양심을 지킬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그 양심과 명령과 충돌했을 때 그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980년 광주에 갔던 군인들은 갈등하지 않았을까? 만약 그들이 명령을 거부했다면, 저 사람들 평범한 시민들로 보이는데 나 죽어도 발포 못하겠다고 했다면 어땠을까. 지난 5월 31일, 물대포를 책임지는 사람이 이 물대포를 이렇게 직사로 가까이서 쏘면 사람 다친다고 못 쏘겠다고 했다면 어땠을까? 군대라(경찰)는 특수한 조직 내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기 쉽겠지만 많은 이들이 불이익을, 감옥행을, 심지어 죽음을 택하면서도 자신의 양심을 지키고자 했다.


그리고 그들의 역사가 쌓여서 이제는 많은 나라에서 그러한 법과 양심이 충돌할 경우 무조건 법의 우위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조화로운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대체복무제를 도입했다. 오랜 군사독재정권과 안보이데올로기가 팽배한 한국이기에 불편하게만 느껴지는 병역거부이지만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면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립된 나라 중에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터키 정도밖에 없다.


명령이 거부하면 군대가 유지되겠냐는 비판도 존재한다. 그러나 나치시절 일어난 모든 일은 당시 나치법에 의한 합법적인 명령에 따른 결과들이었다. 당시 독일 전쟁범죄자들을 재판한 뉘렌베르크 재판은 명령을 따랐다는 이유로 군인 개개인의 책임을 면하지 못함을 선언했다. 그러한 역사를 통해 인류는 군인에게 자신의 양심을 지킬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 결실 중 하나가 대체복무제이다.


시민불복종이 필요한 때


미국산쇠고기 전면 수입개방 반대 72시간 릴레이 촛불문화제 나흘째인 8일 새벽 서울 세종로 사거리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청와대로 진출을 시도하기 위해 경찰들과 대치를 벌이다가 한 시민이 전경버스에 걸려있는 태극기를 붙잡고 비폭력을 요구하며 울부짖고 있다.
ⓒ 유성호

그렇다면 시민은 어떨까? '군인이 명령에 복종하는 것처럼 시민도 법에 복종해야 한다',' 불법은 무조건 안된다'는 논리는 그것이 법치주의의 전부인 냥 매우 강하게 사회를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군인에게 병역거부가 있다면 시민에게는 시민불복종이 있다.


멕시코 영토에 대한 야욕을 가진 미국이 1846년 멕시코 전쟁을 일으키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는 젊은 작가는 신문 논설에 '국가의 법이 내 양심이 금지하는 것을 명한다면, 내 양심이 우선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글을 실은 후, 전쟁비용으로 사용될 인두세 납부를 거부한다. 세금 징수원이 여러 방법으로 설득을 하지만 '감옥 가기에 지금만큼 좋은 때도 없다'라고 대답하며 감옥행을 택한 소로는 이후 '시민 불복종'의 정신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기억된다.


법은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법이라서가 아니라 그 법이 이 사회 속에서 공동체의 안녕을 보장하고, 구성원들의 합의와 지지를 바탕으로 하기에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이라는 자신의 생명과 직결되는 사안에 대해서 압도적인 시민들이 의견을 제시하는데도 대표자로 선출된 그 누구도 책임 있게 반응하지 않았기에 수십만이 거리로 나온 지금의 상황을 보자. 그런 상황에서 '일몰 후 집회금지'라는 집시법이 그것을 가로막는다면 사람들은 고민할 수밖에 없다. 법을 어길 만큼 스스로의 양심이 깊고 확고한 것인가. 연행과 처벌을 감수할 만큼 중요한 것인가. 무조건 법을 지키자는 말만큼 무모한 것이 무조건 법을 어기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진지한 고민을 통해서 사람들은 양심을 따르기로 했다.


또한 사람들은 실정법을 넘어서는 헌법을 통해서 자신의 행동의 근거를 만들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의 문구가 지금처럼 널리 울려 퍼진 적이 있을까? 불법집회 해산하라는 경찰의 방송에 사람들은 국민주권원리를 외친다. 이 집회가 합법이냐 불법이냐 보다 국민주권이 더 앞에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조항들로 가득한 집시법에 대한 문제제기 역시 거세지고 있다.


그렇기에 촛불집회에서 사람들의 양심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사용되는 비폭력 직접행동은 합법/비합법의 틀을 뛰어넘는다. 사람들은 비폭력을 외치지 준법을 외치지 않는다. 세종로 한 복판에 설치된 거대한 컨테이너 앞에서 사람들은 이미 정부가 스스로의 정당성을 포기했다고 판단했다. 그 앞에 쌓은 스티로폼 탑에서 사람들이 논쟁한 것은 준법투쟁이 아니었다. 스스로가 구성한 폭력과 비폭력의 기준선을 조정하기 위한 과정이었고, 결국 그날 새벽 컨테이너 위에서는 많은 깃발이 휘날렸다.


법을 넘어서는 윤리와 도덕을 통해 저항 이어가길


많은 사람들이 양심을 이유로 전경에서 육군으로 전환을 요구한 이 모씨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필자 역시 그의 힘든 결정에 존경을 표하면서 앞으로 있을 많은 어려움에 함께 하겠다는 마음을 보낸다.


법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물론 법을 통해 우리 사회의 틀이 유지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법이 아닌 우리가 합의하는 윤리와 도덕이다. 그리고 그것은 근간은 생명과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닐까. 그 가치가 바로 '광우병 쇠고기 반대'와, '경찰도 시민도 다치면 안된다는 비폭력의 외침'과, '방아쇠를 당길 수 없다는 양심'에 모두 닿아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시대마다 사람들의 스스로의 성찰을 통해서 거대한 분노와 요구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새로운 세상과 법을 만들어냈다. 87년의 우리가 그랬고, 촛불을 든 지금의 우리가 그렇다.  길을 새롭게 만드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루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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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진정한 역할
2008/06/13 오후 3:46 | 이런생각저런생각

몇몇 우리 언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본보기 인것 같습니다.

언론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정권에 아부하고 또다른 권력이 됐을때 그 피해는 국민들뿐입니다.

대한민국의 또 다른 축으로 권력화된 몇몇 언론을 규탄합니다.
그간의 일을 국민앞에 사죄하고 진정으로 국민 곁으로 돌아와 주시길....

美언론도 촛불시위 동참?
[머니투데이] 2008년 06월 13일(금) 오전 11:16   가| 
[머니투데이 오수현기자][뉴욕타임스·USA투데이, 쇠고기 안전성 문제제기 '여론소통']한국의 '촛불시위'가 자국 쇠고기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을 바꾸고 있다.

미국 정부와 미국민들은 그간
미국 쇠고기에 대한 한국인들의 문제 제기를 단순히 '몽니'정도로 치부해 왔다. 자신들이 아무렇지 않게 매일 상용하는 쇠고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한국인들의 정서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대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한국인들의 저변에는 '악질적인 반미감정'이란 '배후세력'이 자리했을 것이란 의구심마저 거두지 않았다.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의 "한국인들이 광우병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학습하기 바란다"는 발언에는 한국 촛불시위에 대한 미국 정부의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기류는 한국의 촛불시위를 바라보며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민이 왜 저럴까'하는 의문의 출발점이다. 그 정점은 서울 심장부를 뜨겁게 달군 6.10 촛불시위였다.

미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유력 언론들은 자국산 쇠고기에 대한 자신들의 선입견을 일단 접고 한국인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11일 '미 쇠고기의 문제점'(Questions on U.S. Beef Remain)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미 쇠고기의 안전성을 되짚었다. 그동안 미 쇠고기 안전성에 대해서는 논외로 치던 미 언론으로서는 이례적이자 최초의 변화였다.

뉴욕타임스는 이 기사에서 자국 쇠고기 검사의 문제, 농무부와 업계의 유착 , 동물성사료 제한을 둘러싼 관할당국간의 힘겨루기 등 안전성과 관련한 문제점들을 상세히 지적했다. 결론은 '미 쇠고기는 이래서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였다. 처음부터 안전성 문제를 제기한 한국민들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뉴욕타임스에 이어 미 전국일간지인 USA투데이도 12일 사설을 통해 미국 검역 시스템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뒤 한국인들이 촛불시위를 하는 이유가 "자신들이 처한 위험성을 미국 정부와 육류업체가 무시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무엇을 먹느냐의 문제는 개인의 품위와 관련된 문제"라며 "음식은 지역에 따라 문화이기도 하고 종교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미 유력 언론들의 잇딴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지적은 마침내 미 언론, 즉 미국 여론이 한국민과 '소통'을 이루기 시작했다는 중요한 상황변화로 인식된다.

나아가 재협상이든, 추가협의든 보완 협상에 나선 우리 협상대표단에게도 적지않은 레버리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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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과 경제 성장
2008/06/12 오후 12:24 | 이런생각저런생각

살진 돼지를 보고 행복하다 할 것인가 / 임종석 [왜냐면 08/03/13]

/충남대 일어일문학과 교수

박지원의 이용후생과 맥이 닿은 실용주의

새 정부의 그것과 다른 점은 정신적인 면

같은 물이라도 독사가 먹으면 독이되고

젖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는 법이다

도덕성 무너진 성장은 사상누각과도 같다

 

인간이 인간됨은 정신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이 동물과 다름은 도덕이라든가 윤리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 정부가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정책이라는 것들을 보면 경제, 경제, 경제, 경제요, 그 경제를 위한 실용주의뿐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실용주의라고 하면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떠오른다. 실용주의는 프래그머티즘의 역어로 실제의 결과가 진리를 판단한다고 하는 철학사상을 말하는데, 사고나 관념의 진리성은 실험적인 검증을 통해 객관적으로 타당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지원은 <열하일기>를 통해 기구를 편리하게 쓰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넉넉하게 하여 국민의 생활을 윤택하게 한다는 ‘이용후생’을 주장했다. 그는 <광문자전> <역학대도전>를 써 양반계층과 도학자들의 도덕적 위선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가운데 사회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박지원은 한국의 실용주의의 밑그림을 그렸다 할 것이다.

실용주의는 예나 지금이나 유용하다. 그럼에도 현정부의 실용주의를 문제삼고자 한 것은 박지원의 그것과는 달리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도덕이라든가 정신적인 면을 도외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항간에는 인터넷을 타고 번지기 시작한 ‘고소영 에스라인’이라든가 ‘강부자’ 등의 신조어가 봇물을 이룬다. 이외에도 강남의 금싸라기 땅을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르킨다는 ‘강금실’, 이경숙 인수위원장 이름을 영어식으로 발음한 ‘리켱숙’, 고려대·경상도·강남 첫글자를 딴 ‘3K’, 테니스의 인맥을 지칭하는 ‘T라인’ 등 실로 많은 신조어들이 사회 곳곳에서 이명박 정부를 비웃고 있다. 이는 위장전입을 하고 자식을 위장으로 취업시키고, 비비케이는 자기 회사가 아닌데 자기 회사라 했다고 자신이 거짓말쟁이임을 스스로 밝힌 꼴이 된 이명박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다.

그의 인사 스타일을 보면 과거야 어찌됐건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식이다. 그러나 같은 물이라도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되지만 젖소가 마시면 우유가 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같은 능력이라도 바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사용하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지만 도덕성에 문제가 많은 사람이 쓰면 사회를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도덕성이 결여된 사람들은 대개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부동산 투기를 하든, 위장전입에 위장취업을 하든, 남을 속이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사양하지 않는다. 법망에 걸려 쇠고랑만 차지 않을 일이라면 말이다. 이들은 마치 지구가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생각한다.

자기중심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 있다. 소위 패거리문화라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나와 가까운 사람이 하면 나쁜 일도 좋은 일이 된다. 그러나 상대방과 가까운 사람이 하면 좋은 일이라도 나쁜 일이 된다. 이명박 정부의 장관 예정자에서 탈락한 세 사람 말고도, 과거에 장상·장대환 총리 후보자나 한나라당이 낙마시킨 많은 장관 후보자들을 쟀던 그 잣대를 현재 장관들에게 들이댄다면 과연 그 직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이들의 인준동의안을 부결시키려는 의원들에게 국정의 발목을 잡으려 한다며 외양간의 소가 다 웃을 말로 목에 핏대를 올렸다.

방법은 달리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의 전재산을 내어놓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무엇보다도 먼저 지키고, 경제를 신장시키기 위한 실용주의를 국민들이 기름진 돼지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는 데 쓰도록 표방해야 한다. 도덕성이 결여된 상태에서의 경제성장도 우선은 성공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것은 사상누각과도 같은 것이다.

나는 소망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도덕성이라는 기초 위에 경제라는 건물을 세워 국민을 행복하게 하기를. 또, 대통령이 되려고 전 재산을 내어놓겠다고 했을지라도 그 약속을 지켜 5년 임기를 마친 후 빈손으로 국민의 환호를 받으며 청와대를 나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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