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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님 너무감사 제가 숙재..
정말 알고 싶었던 내용..
좋은 정보 잘 보고 갑..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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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11/26
 

한국사 요약 정리 -19- 현대사회

현대 사회의 발전

1. 현대 사회의 성립

(1) 현대의 세계

1) 냉전 체제(Cold War)
냉전 체제의 형성 : 미국 진영과 소련 진영의 대립
냉전의 완화
소련의 평화 공존 정책 : 흐루시초프의 평화 공존 표방으로 미소 관계 완화 →
쿠바 사태와 베트남 전쟁으로 동서 냉전 체제 지속
닉슨 독트린 발표(1969) : 베트남에서 미군의 철수,
중국의 유엔 가입 승인 등 미국 외교 정책의 변화
유럽 공산 체제의 붕괴 :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 정책으로 공산주의 체제의 변혁 초래 →
동유럽 공산 정권의 붕괴, 독일의 통일

2) 제 3 세계의 대두
배경 : 아시아및 아프리카의 각성, 민족주의의 발전, 반제국주의, 반식민지주의 운동의 전개
제 3 세계의 형성(비동맹 중립 노선 표방) : 반둥회의(1255) - 반식민주의, 민족주의, 평화 공존 등 평화 10원칙을 채택하여 독자 노선 발표 → 국제 연합을 통해 국제 정치에 영향
유럽의 통합 : 유럽 공동체(EC) → 유럽 연합(EU)

(2) 한국의 현대 사회

1) 광복 직전의 건국 준비 활동
① 대한 민국 임시 정부 : 한국 독립당 결성, 대한 민국 건국 강령 공표(1941)
② 조선 독립 동맹 : 중국 화북 지방, 사회주의 계열, 조선 의용군 편성

2) 8.15 광복 : 연합국의 승리, 국내 독립 운동의 결과

3) 국토의 분단
① 한국 독립의 국제적 약속 : 카이로 회담, 포츠담 선언
② 민족의 광복과 국토의 분단 : 미군과 소련군의 진주, 군정 실시
③ 독립 국가 수립 운동 :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결성, 한국 민주당 창당
④ 북한 : 김일성의 등장, 공산주의 정부 수립 기반 마련

4) 신탁 통치 문제
①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 미소 공동 위원회 설치와 미영중소에 의한
최고 5년 동안 신탁 통치 결정
② 신탁 통치 반대 운동 전개 : 제2의 광복 운동의 성격을 띠면서 전국적으로 전개,
공산주의자들은 3국 외상 회의 결정을 수용하면서 중도 이탈

2. 대한 민국의 수립

(1) 대한 민국의 수립

1)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의 활동
① 한국 문제의 유엔 상정 : 남북한 총선거에 의한 통일 정부 수립 결정
②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의 입국 → 소련의 북한 입국 거절 → 남한만의 총선거 실시 결정
2) 대한 민국 정부 수립
① 남북 협상의 추진 : 김구, 김규식 등 남북 협상을 통한 통일 정부 수립 노력 → 실패
② 총선거의 실시(1948. 5. 10) : 남한만의 총선거 실시
③ 대한 민국 정부 수립(1948. 8. 15) : 이승만을 대통령, 이시영을 부통령으로 선출
④ 유엔의 승인(1948. 12) : 유엔 총회는 대한 민국을 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로 승인

3)6.25 전쟁
1) 북한 정권의 수립
① 정부 수립 운동 : 평남 건국 준비 위원회 결성(조만식)
② 공산 정권의 수립 : 북조선 임시 인민 위원회 구성
③ 사회주의 개혁 추진 : 토지 개혁법, 남녀 평등법, 산업 국유화법 공포 →
공산주의 지배 체제 확립
④ 인민 공화국 수립 : 북한 단독 정부 수립(1948. 9)
⑤ 대남 교란 작전 : 남한 지역에 소요 사태 조성

2) 62.5 전쟁과 공산군의 격퇴
① 배경 : 공산주의자들의 한반도 적화 야욕, 미국이 극동 방위선에서 한반도 제외(애치슨 선언)
② 6.25 전쟁 : 북한의 남침(1950) → 유엔군 참전 → 중공군 개입 → 전쟁의 교착 상태

3) 휴전과 전후 복구
① 휴전의 성립 : 공산군측의 휴전 제의 → 휴전 반대 시위 → 휴전 협정 체결(1953. 7)
② 한미 상호 방위 조약 체결(1953. 10) : 대한 민국의 안보 체제 강화
③ 전후 복구 사업
㉠ 6.5 전쟁의 피해 - 국토의 초토화, 각종 산업 시설 의 파괴, 사상자로 인한 인명 피해 막심
㉡ 전후 복구 - 국민과 정부의 전후 복구 노력, 자유 우 방의 원조 → 산업 시설 복구, 국토 재건
④ 6.25 전쟁의 영향
긍정적 측면:경제 발전 의지 고양, 공동체 의식 약화
부정적 측면:이승만 정권의 독재화 및 서구 문화의 무분별 침투

3. 민주주의의 시련과 발전

(1) 4.19 혁명과 민주주의의 성장

1) 이승만 정부(1948-1960)
권력 구조 : 대통령 중심제, 단원제 의회
발췌 개헌(1952) :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
사사 오입 개헌(1954) : 대통령 3선 금지 조항 철폐 →
장기 집권 추구, 독재 정치 강화, 부정 부패 심화

2) 4.19 혁명(1960)
원인 : 자유당 정권 독재 정치, 부정 부패, 부정 선거
경과 : 3.15 마산 의거 → 4.19혁명으로 발전 → 이승만의 대통령 사임
의의 : 독재 정권 붕괴, 자유 민주주의 수호

3) 장면 내각(1960-1961)
권력 구조 : 내각 책임제, 양원제 의회(대통령 윤보선)
시대 상황 : 자유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노력,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정치력 부족

(2) 5.16 군사 정변과 민주주의의 시련

1) 5.16 군사 정변과 박정희 정부
① 5.16 군사 정변(1961)
군부는 헌정을 중단시키고, 국가 재건 최고 회의를 구성하고 군정을 실시
혁명 공약 발표
정치 활동 정화법 제정 : 구정치인 정치 활동 금지
민주 공화당 창당, 헌법 개정 → 1963년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 당선
②박정희 정부(1963-79)
권력 구조 :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 단원제 의회
주요 정책 : 경제 성장 우선 정책, 한일 국교 정상화, 장기 집권 위한 3선 개헌 강행(1969)

2) 유신 체제의 등장(1972-79)
① 권력 구조 : 대통령 간선제(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선출), 단원제 의회
② 배경
대외적 : 닉슨 독트린에 의해 주한 민군의 감축 결정
대내적 : 국가 안보와 사회 질서 강조,지속적 경제 성장 추구
성격 : 권위주의적 독재 통치 체제
결과 : 민주 헌정의 회복과 개헌을 요구하는 시위 빈발, 인권 탄압에 대한 국제 여론의 악화
붕괴 :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된 10.26 사태로 유신 체제 붕괴(1979)

3) 전두환 정부(1981-88)
출범 과정 : 신군부 세력이 병력을 동원하여 군권과 정치적 실권 장악(12. 12 사태) →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진압(1980) → 7년 단임의 대통령 간선제의 헌법 개정 → 전두환 정부 출범(1981)
권력 구조 :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 단원제 의회
성격 : 권위주의적 통치와 강압적 통제 체제, 인권 탄압, 부정비리 →
국민의 저항으로 6월 민주 항쟁 발생(1987)

(3) 민주주의의 발전

1) 노태우 정부(1988-1993)
출범 과정 : 6.29 민주화 선언 →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 → 노태우 정부 출범(1988)
주요 정책 : 지방 자치제의 부분적 실시, 서울 올림픽 개최,
북방 정책의 추진(동구권 국가, 소련중국과 외교 관계 수립),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2) 김영삼 정부의 출범(1993-1998 )
민주화에 대한 제도적 정착 요구와 통일 문제에 대한 관심의 증대 속에서 출범
공직자 재산 등록, 금융 실명제, 지방 자치제의 전면적 실시
IMF체제 돌입, 국가적 경제 위기 초래
3)김대중 정부 출범(1998~2003)
의료보험, 국민연금등 시행,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햇볓정책등의 성과로 노벨상 수여
IMF체제 타계

오늘날의 한국 경제
기업의 해외 진출 :
동남 아시아와 중국에서 현지 생산 활동 전개, 전자및 자동차 산업의 유럽,미주 지역 진출
취약성 : 국민 간의 소득 격차, 도시농촌 간의 격차, 시설 투자의 불균형, 노사 간의 갈등
극복 과제 : 대외적 무역 장벽, 첨단 과학 기술 인력의 확보,해외자본의 적극적 투자 확보

한국사 요약 정리 -18- 일제시대

제3장 국권회복운동의 전개


Ⅰ. 민족의 수난
일제의 무단통치
중추원: 총독부의 자문기관, 황족과 고관들을 예우하기 위한 형식적 기구,
친일인사로 구성되었으며 의장(정무총감)의 허가 없이 발언할 수 없었으며,
3.1운동때까지 한 번도 소집되지 않았다.
의병운동은 1915년까지 산발적으로 일어나다가 만주,연해주로 옮기게 됨.

토지의 약탈
1910 토지조사국 설치, 1912 토지조사령, 1918까지 토지조사사업 실시, 동양척식회사 등을 통해 토지 약탈(총독부 토지 소유 전국의 40%)

1910년대 해외의 민족운동
신흥무관학교(1919): 만주, 독립군의 기간요원 양성, 일본의 침략 비판,
대한광복군정부(1914): 블라디보스톡, 이상설 정통령, 이동휘 부통령, 대한국민의회(1919)로 이어짐
미국: 하와이에 국민회(대한인국민회), LA에 흥사단(1913, 신민회 후신)

3.1운동의 배경
일본 조선청년독립단의 2.8 독립선언(1919), 민족자결주의 등

3.1운동의 전개
민족대표33인은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
탑골공원에서는 시민과 학생들이 모여 낭독 후 시위에 들어감. 4월말까지 계속
의의: 전통사회의 전근대적 성격을 일소시키는 중요한 계기, 상해임정 수립 촉구

Ⅲ. 식민지통치체제의 변화
문화정치의 표방
식량의 약탈
산미증식계획: 일본의 농업공황(1934)때까지 계속, 쌀중심의 파행적인 경제구조화
소작쟁의: 1921이후 해마다 증가하여 1930년 전후로 최고조, 항일민족운동의 성격을 띠어갔다.
노동쟁의: 소작쟁의와 함께 1930년대초 절정

민족말살정책
만주사변(1931),중일전쟁(1937),태평양전쟁(1941)을 거치며 민족말살정책,
병참기지화: 국민징용령,학도지원병제도,징병제도,
여자정신대근무령,內鮮일체,조선어학회,진단학회해산,한글언론지폐간,창씨개명 등

Ⅳ. 민족운동의 새 단계


학생운동
6.10만세운동(1926): 순종인산일, 조선공산당 주도, 새로운 활력
광주학생운동(1929): 독서회의 활동에서 비롯, 전국 확산

사회운동
1918 이르크츠크 공산당한인지부와 하바로브스크 한인사회당 결성
1925년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가 조직됨.

신간회(1927-1931)
-사회주의계와 민족주의계의 통합, 공식적 조직
-3대강령: 1.정치적,경제적 각성/ 2.단결/ 3.기회주의(자치운동)의 배격
-한국인 착취기관의 철폐, 한국인에 대한 특수취체법의 폐지, 교육차별의 금지, 한국어교육의 실시, 과학사상연구의 자유 등 주장
-광주학생운동시 진상조사단 파견, 방계조직으로 여성단체인 근우회 조직

민족문화의 수호운동
1907국문연구소→1921조선어연구회→1931조선어학회→한글학회
조선어학회: 한글맞춤법통일안(1933), 이승희,최현배 등, 브나로드운동과도 연결,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해산(1942)
꠆ꠏ민족주의사학(박은식,신채호→정인보,문일평,장도빈,안재홍)
ꠉꠏ사회경제사학(백남운,전석담→북한)
ꠌꠏ실증주의사학(최남선,안확→이병도→남한)

박은식: <한국痛史>근대이후의 일본의 침략과정, <한국독립운동지혈사>,
민족정신을 ‘혼’이라하여 혼이 담긴 역사의 중요성 강조
신채호: 주로 고대사연구에 치중, <조선상고사>,<조선사연구초>, 역
역사를 ‘我와 非我의 투쟁의 기록’, 민족주의사학의 기반을 확립
정인보: <조선사연구>, ‘얼’ 강조
장도빈: <조선사상사>, 발해사도 연구
안재홍: <조선상고사감>, 신민족,신민주주의, 민족‘정기’ 강조
최남선: <조선역사>, 불함문화론
이병도: 실증사학자들이 함께 모인 진단학회 조직(1934)
>
문학사조(1919-30‘s초): 자연,사실,퇴폐,낭만,민족,계급,순수
1930년대에는 일제의 탄압으로 민족주의,사회주의문학은 모두 위축되고 순수문학이 대두하였으나 그나마도 일제말기에는 탄압을 받았다.

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독립군의 활동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
수립: 연해주,상해,한성에서 수립된 3개의 임시정부가 한성정부의 정통성을 계승 상해에서 수립,
3권분립의 원칙위에 대통령제와 내각책임제를 절충,

활동: 기관지<독립신문>, <한일관계사료집>발행, 김규식을 전권대사로 파리강화회의 파견, 미국에 구미위원부, 연통제로 본국과 연락, 독관,군감,면감등 비밀행정조직으로 자금전달, 광복군편성 중국군과 합동하여 항일전쟁

무장독립운동의 전개
1. 1920년대
봉오동전투(1920):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500명 사상
청산리전투(1920): 김좌진의 북로군정서, 1200명 사살
경신참변(1920): 일본군의 한국민 대대적 학살
자유시(흑하)참변(1921): 러시아와 연결하려다 일본의 요청을 받은 러시아 적군에 의해 무장해제를 당하고 많은 독립군이 희생됨.

2. 1930년대
한국독립당예하 한국독립군, 조선혁명당예하 조선혁명군 주축
한국국민당+조선혁명당+한국독립당→한국독립당(1940)
3. 1940년대
광복군(1940): 지청천(이청천)사령관, 이범석 참모장, 1941 대일,대독선전포고,
대일전쟁에 연합군과 참가(참가결정은 임정에서 1937년에 함),
대적선전,포로,심문,선전전단의 작성,암호문해독 등 다양한 작전 수행, 국내정진작전(1945.9) 계획

1945년 원폭투하와 일본 관동군의 붕괴등으로, 일본의 예상보다 빨리 항복하여 이워지지 못했다.

한국사 요약 정리 -17 -국권 회복운동



제국주의침략과 국권수호운동
Ⅰ. 독립협회의 활동과 대한제국
열강의 이권침탈
아관파천(1896): 러시아공사가 베베르에서 스피에르로 바뀐 후, 이범진 등이 베베르와 공모하여 고종을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기고, 이범진,이완용 등의 친러내각을 세움. 이 때 김홍집,어윤중은 친일파로 지목되어 일반 민중에게 살해됨.

독립협회의 활동
결성: 1896, 서재필,윤치호,이상재,남궁억 등 각층 인사들이 참여.
1. 자주독립운동: 독립문(국민성금), <독립신문>, 독립관에서 토론회, 고종환궁요구, 이권회복주장
2. 자강혁신운동: 입헌군주제, 각종제도의 근대화, 신교육, 근대적 산업개발, 국방력강화 주장
3. 자유민권운동: 천부인권사상을 근거로 생존권과 재산권 보호,
참정권운동(언론과 집회의 자유권, 국민평등권, 국민주권론),
중추원을 개편, 관선의원과 민선의원을 구성하되 독립협회회원을 민선의원에 선출하고자 시도
만민공동회: 국정의 개혁을 실현시키기 위한 민중의 정치운동, 정부의 고관도 참여한 가운데 헌의6조를 채택하고 고종에게 건의하여 그 실시를 약속받음.
해산: 정부는 보부상을 중심으로 어용단체인 황국협회를 조직, 독립협회를 탄압한 뒤,
사회혼란을 이유로 해산시켰다(1898, 만민공동회는 1889까지 존속)

대한제국의 성립과 광무개혁
대한제국: 1897, 고종이 환궁하자 국호를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
갑오개혁에서 ‘대군주’라 칭했던 왕을 ‘황제’라 고쳐 체제 정비
광무개혁(舊本新參의 방향)과 대한제국의 정책
-복고주의 성격이 강해 황제권의 강화가 강조(1899 대한국제에 잘 나타남),
황제의 전제권을 법제적으로 확립.

--청과 통상조약(1899)으로 전근대적 관계 청산, 국제적 지위 대등
-북간도관리사를 파견하여 간도를 영토로 편입할 계획을 하기도.
→광무개혁의 부정적 견해: 친러세력 집권에 의한 자주성의 한계, 집권세력의 보수성,
독립협회 활동 억압 등

cf. 간 도
1712 백두산 정계비(토문)
1883 어윤중 서북경략사
1885 이중하 토문감계사(토문=도문 주장)
1903 이범윤 간도관리사
1909 간도협약: 日통감부가 청에 간도를 주고 안봉선 철도부설권을 가져옴.

Ⅱ. 일제의 국권침탈과 의병운동
러일전쟁과 일제의 침략
.
러일전쟁 발발(1904.2): 대한제국은 국외중립을 선언
제1차한일협약(1904.8): 일본인 외교고문과 외국인 외교고문(스티븐스) ‘고문정치’
가쓰라,태프트밀약(1905.7):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하고 한국지배를 인정받음
제2차영일동맹(1905.8): 한국에 있어서 정치,경제,군사상 특수이익을 보장받음
포츠머스 강화조약(1905.9): 전쟁후 러일간 조약으로 미국이 중재, 한국에 대한 우선권 인정.

일제의 주권침탈
1904년 일본은 송병준,이용구 등을 사주하여 일진회란 친일단체를 만들게 함.
제2차한일협약(을사조약, 1905.11): 외교권 박탈, ‘통감정치’, 초대통감 이또
고종의 헤이그 밀사사건(1907): 네덜란드 만국평화회의, 이준,이상설,이위종.
일본은 이것을 문제삼아 고종을 퇴위시킴(순종즉위, 연호융희)
기유각서(1909): 사법권 강탈
1910.6 경찰권 박탈 후, 1910.8 주권박탈(경술국치, ‘총독정치’)
cf. 박탈과정: 재정권→외교권→행정권→군사권→사법권→경찰권→주권
cf. 1907.7사건: 헤이그밀사→고종퇴위→한일신협약→군대해산

민족의 저항
1904 황무지개척권 요구때 보안회를 조직하여 반대여론을 일으켜 철회시킴
을사조약후: 장지연<황성신문>시일야방성대곡,
민영환,조병세,홍만식 등 자결, 나철,오기호 5적암살단 조직

군대해산과 의병운동의 확대
정미의병: 각층 포함, 해산군 합류로 전력강화,
공격대상이 진위대나 친일인사가 아닌 일본군이 되었다는 점도 큰 변화.
창의군 결성: 의병의 전국적 조직, 13도 총대장 이인영, 군수장 허위
서울진공작전(1908.1): 이인영 부친상(불효는 곧 불충이라)으로 실패, 창의군해산
이후 의병은 1909년까지 활동하다가 일본의 초토화작전으로 간도나 연해주로 이동,
독립군에 합세하였고 국내 활동은 계속되지 못하였다.

Ⅲ. 애국계몽운동의 전개
경제자립운동
국채보상운동(1907): 부인단체,신민회,언론기관 주도 모금운동
.

정치,사회단체의 활동
보안회(1904): 협동회로 개칭
진명회(1904): 보부상의 자성단체, 공진회로 개칭
헌정연구회(1905): 입헌의회제도 주장, 장지연 등에 의해 대한자강회로 개편
대한자강회(1906): 전국에 지회를 두고 연설회, 월보간행, 사회문화운동, 고종퇴위 반대운동,
해산 뒤 대한협회(1907)로 활동 계속.
신민회(1907): 안창호,이동영,양기탁,이승훈 등
<대한매일신보>기관지, 해외독립운동기지 건설
105인사건(1911): 안명근의 데라우찌 총독 암살미수사건을 날조하여 윤치호,양기탁,이승훈 등
신민회 간부 105명을 구속하자, 신민회 활동이 중단됨.

민족교육운동
원산학사와 동문학(1883): 최초의 근대적 학교, 원산학사는 신지식과 외국어를 교습한 사립학교, 동문학은 외아문이 영어교습기관으로 세운 것
육영공원(1886): 최초의 현대식 관립학교, 미국인교사를 초빙하여 양반자제를 교습했으나 교육열의 부족과 부적응으로 1894 폐지됨.
사립학교설립: 이용익 보성학교(1905), 이상설 간도 서전서숙(1906), 안창호 평양 대성학교와 정주 오산학교(1907) 등. 일제는 사립학교령(1908)으로 통제.

국학운동과 신문학
이당시 국사연구는 근대역사학으로서의 과학적 기반 구축에는 미치지 못하였으나 민족주의사학의 기반을 확립(장지연,신채호,박은식등)하였다.

신채호<독사신론>: 1905년 이후에는 종래 편년체적 서술방식에서 벗어나 근대적 역사서술체로 발전하였는데 일본중심으로 서술된 문제점이 있었다. 이러한 점을 지적하고 민족주의 역사학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 이 책이다.

국어연구: 유길준<조선문전>주시경<국어문법>,<국어문전음학>,
cf. 유길준<서유견문>(1889)은 새로운 국한문체의 보급에 공헌, 최초 언문일치체
국문연구소(1907): 학부안에 설립, 한글창제이후 최초의 국문연구 국가기관, 조선어학회의 모체

종교계의 계몽활동
천주교: 일반민중과 천주교도간의 충돌이 발생하기도(1901, 제주도 등)
개신교: 알렌의 광혜원(1885, 최초 서양의술시행), 언더우드,아펜셀러 등 학교건립
유교: 박은식의 유교구신론(국민적 자립과 부국강병을 위한 교육의 진흥)
불교: 한용운<조선불교유신론> 미신적요소 배격과 불교의 쇄신, 학교,병원 건립
천도교: 친일파가 동학을 흡수하려 하자 1905 손병희가 천도교로 개칭, <만세보>간행 등 민족운동
대종교: 1909 나철이 단군신앙을 발전시켜 창립, 보수적이었으나 2대교주 김교헌은 교단의 총본사를 만주로 옯겨 간도,연해주 등의 해외항일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면서 성장하였다.

한국사 요약 정리 -16- 근대사회로의 진입


제1장 근대화의 추진
Ⅰ. 대원군의 정치와 개항
대원군의 개혁정치
비변사 폐지, 의정부 기능 부활, 삼군부 재설치
<대전회통>,<육전조례>간행, 왕실,국가의 전례를 정비하
호포(처음엔 동포)제 실시: 군포를 양반에게도 징수(균등하진 않았다)
좁은 지역을 단위로 실시되는 사창제 실시, <사창절목>제정
서원 정리, 경복궁 중건
원납전(기부금), 결두전(토지 부가세),, 당백전(고액화폐)주조, 양반의 묘지림까지 대대적 벌채

쇄국정책
국제정세: 중국 북경조약(1860)으로 영,불이 북경점령,
일본은 미국과 조약(1854) 및 메이지유신(1868), 러시아는 남하하여 연해주 확보
이양선의 출몰: 1832 영국 상선 암허스트호가 처음 통상 요구
병인사옥: 대원군은 처음에는 천주교에 대해 관용적이었으나,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 선교사와 연결하려다가 실패하자, 유생들의 반대를 받아들여 탄압.
9명의 프랑스 선교사와 남종인 등 8000명 처형.
쇄국정책: 오직 전통적인 청과의 관계만이 허용

양요
병인양요(1866)
-병인사옥때 살아남은 3명의 프랑스 신부중 리델이 중국으로 탈출하여 프랑스 극동함대 사령관인 로즈 제독에게 보고하여 로즈는 조선 침공을 강행.
-강화도, 한성근 부대가 문주산성에서, 양헌수 부대가 정족산성에서 격퇴.
cf. 옵페르트 도굴사건(1868): 독일상인 옵페르트가 남연군의 무덤을 도굴
신미양요(1871)
-미국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교역을 요구하다 전몰됨(1866).
이 사건을 구실로 미국 아시아함대 사령관 로저스 부대가 침공.
-강화도, 초지진을 점령한 미군을 어재연 부대가 광성진, 갑고지에서 격퇴.
양요후 대원군은 척화교서를 반포하고 종로와 전국 중요지역에 척화비를 세움.

통상개화론의 대두
박규수(박지원의 손자), 오경석, 유홍기등이 주도.

강화도조약과 개항
대원군 실각(1873): 민비세력의 성장과 대원군의 실정을 공격하는 유생 최익현의 상소를 계기로.
운양호사건(1875): 일본의 조선침략 구실 마련

강화도조약(병자수호조약, 정식명칭은 한일수호조규, 1876)
-전문12조: 조선은 자주지방으로 일본과 평등한 권리를 보유한다(1조, 청의 간섭 배제 목적),
일본은 조선의 연해를 자유로이 측량한다(7조 영해침입 승인)
일본인이 조선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때는 일본관헌이 이를 심판한다(10조, 치외법권인정)

구미제국과의 수교
조미수호통상조약(1882)
- 러시아의 침략위협을 강조하여 미국과의 수교의 필요성을 제시한 황준헌의 <조선책략>이 소개됨.

-청의 중재로 체결
-민영익을 전권대신으로 하여 홍영식,서광범 등을 수신사로 미국에 파견,
미국은 초대공사 푸우트가 옴
조러통상조약(1884).

Ⅱ. 개화운동과 척사운동
개화사상의 고조
개화운동의 전개
일본에 수신사(공식 외교 사절단) 신사유람단(선진문물 시찰 목적)파견
청에 영선사 파견(1881)
-군비의 강화와 군기제조술의 학습이 주된 목적
- 1880년의 행정기구 개편
-통리기무아문중심-의정부,6조,삼군부 폐지
-5군영 대신 2영(무위영,장어영)


위정척사운동의 전개
1866 병인양요 당시 이항로,기정진 등은 척화주전론
1876 강화도조약시 최익현은 왜양일체론과 5불가소로 개항반대
1881 경상도유생 이만손이 <영남만인소>로 <조선책략>을 비난하고 김홍집의 처벌을 요구, 강원도유생 홍재학도 <만언척사소>로 격렬 운동

Ⅲ. 개화와 보수의 갈등
임오군란
원인: 정부의 급격한 개화정책과 일본침투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차별대우를 받던 구식군인들의 불만이 폭발(1882)
경과: 선혜청을 습격, 일본공사관을 불태우고 교련병대의 일본인 교관, 경기감사 등을 살해,
대원군을 세워 잠시 구제로 복구함, 청이 대원군을 군란의 책임자라하여 청으로 납치하고,
민비가 김윤식을 통해 청과 제휴하여 친청정권이 들어서며 종료됨.
결과: 조일간 제물포조약(1882)으로 일본은 배상금을 받고 일본공사관 경비병을 주둔시킴(청일군대 모두 주둔), 日약화 청강화, 민씨일파는 청에 의지하는 사대당으로 변질

개화당과 보수세력의 대립
보수적 민씨 사대당(민영익,김홍집,어윤중)의 개혁(1882)
-이홍장의 주선으로 중국인 마건상과 독일인 묄렌도르프를 외교고문으로 함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외아문),통리군국사무아문(내아문) 설치
-친군영과 그 밑에 좌우전후의 4영을 설치(원세개 장악)
-청과 상민수륙무역장정 체결: 청의 경제적 침투는 일본을 능가, 반청감정증대
개화당(독립당, 김옥균,박영효,홍영식,서광범)의 세력 성장
-박영효가 임오군란 뒷처리로 일본에 수신사로 간 후부터 활발히 활동
-이들의 건의로 박문국,전환국(화폐),기기국,우정국등이 설치됨
-묄렌도르프의 재정타개책 당오전의 발행 대신 김옥균은 일본으로부터의 차관을 건의하지만,
일본내의 사정으로 도입에 실패하여 이후 입장이 곤란해짐.
1884 청불전쟁 등을 틈타 정변을 일으킴)

갑신정변
경과: 우정국(근대적 우편제도는 을미개혁후 실시)의 개국 축하연을 이용, 민씨일파들과 각군영의 영사들을 살해(1884. 12.4)
의의: 근대적 국민국가를 지향하는 최초의 정치개혁운동
실패원인: 민중지지 결여, 지나친 외세 의존, 자체적인 혁명기반 미비.

결과
-청의 지위 한층 강화
-조일간 한성조약(1885): 공사관의 건축비와 배상금 지불 약속
-청일간 천진조약(1885): 청일양군의 철수와 조선에 파병시 서로 통고할 것을 내용, 이로써 일본은 청과 동등한 권리를 확보하여 한국 침략의 발판을 마련.

Ⅳ. 갑오농민전쟁(동학농민혁명)
열강세력의 침투
청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묄렌도르프를 소환하고 민비를 견제하기 위해 대원군을 돌려보냈다.
영국의 거문도 점령(1885-1887): 러시아의 조선침투 견제, 청의 개입으로 조선의 영토를 점령하지 않는다는 러시아의 약속을 받아낸 후 철수.

日,청의 경제적 침투
갑신정변의 실패로 조선에서의 정치적 진출이 저지된 일본은 경제 침투로 전환
방곡령 사건(1889): 함경감사 조병식이 방곡령 철회 명령을 거부한 사건,
배상금만 지불, 배일의식 고조
청: 일본상인보다 큰 자본,규모,지원으로 일본상인들을 위협

동학교세의 확장
1892 삼례, 1893.1 광화문 복합상소: 교조신원운동과 지방관 탄압금지 요구
1893.4 보은 집회: 교조신원보다 탐관오리의 숙청, 외세배격 구하는 정치적 내용이 부각됨.

갑오농민전쟁의 전개
1894년 이하 음력월
1月.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맞서 동학남접의 접주 전봉준의 지휘 아래 고부관아를 점령,
3月. 고부 백산에서 동학농민군 1차 봉기(반봉건,반체제), 황토현에서 관군을 격퇴하고 북상.
4月. 전주 점령
5月. 청일군대 파견(청은 정부요청으로), 정부는 폐정개혁을 약속, 전주화약성립
집강소(전라도에 설치한 정부 공인의 민정기관으로 지방의 치안과 행정을 담당,
6-7月. 청은 공동철병을 주장했으나,
일본은 대원군을 떠받들고 갑오개혁(1차)을 강요하며 청일전쟁을 일으킴.
9-12月 동학농민군 2차 봉기(항일구국운동), 최시형등 북접 가세, 공주 우금치에서 패배후 종료.
갑오농민전쟁의 의의: 최대규모의 농민운동, 밑으로부터의 혁명, 갑오개혁을 통해 근대사회로 발전하는 계기 마련, 청일전쟁으로 청 물러나고 일본이 조선침략의 기틀을 굳히는 계기가 됨.

Ⅴ. 근대적 개혁의 추진
갑오개혁(1894)
1. 정부는 스스로 내정개혁을 위해 설치한 교정청에서 이미 개혁추진을 하고 있음을 들어 반대했으나, 일본은 강제로 대원군을 앞세운 뒤, 신정부(제1차김홍집내각)를 구성하여 갑오개혁을 시작함(1894여름, 1차개혁), 그러나 청일전쟁 관계로 정부는 군국기무처란 회의기구를 설치하고 거의 독자적으로 개혁정치를 수행

2. 대원군은 개혁에 반발하여 동학,청군과 연결하려고 하자, 일본은 대원군을 은퇴시키고, 급진개화파 박영효,서광범을 영입해 연립내각(제2차김홍집내각)을 구성하고 군국기무처를 폐지한 후, 2차개혁)을 시작하게 함.

→1차는 사회개혁, 2차는 경찰권과 사법권이 중요, 실질적을 일본의 침투 기반 마련
cf. 홍범14조(1895.1.7): 근대적 성문헌법의 효시

을미개혁
청일전쟁후 청일간 시모노세끼(마관,하관)조약 체결(1895): 일본은 대만과 요동할양.
삼국(독프러)이 간섭하자 포기.
삼국간섭후 친러파의 움직임으로 명성황후는 박영효를 몰아내고 이범진,이완용을 기용한 친러정부(제3차김홍집내각)를 세움.
을미사변(1895): 러시아의 세력을 막기 위한 비상수단으로 명성황후시해,
친일내각 수립(제4차김홍집내각)
을미개혁 추진(갑오개혁의 연장): 태양력, 종두법, 우편제도, 연호건양, 군제개편, 령

의병운동의 시작
의병의 시작: 1894.8 안동의병 서상철(6월 일본군의 경복궁 침입 동기)
을미의병--대개가 지방의 유학자, 위정척사운동의 계승. 이듬해 전반에 국왕의 권고조칙으로 해산.

cf. 공통적 개혁안
갑신 동학 갑오 독립: 재정개혁,외세의존배격
갑신 동학 갑오 : 재정(세제)개혁,외세의존배격,문벌폐지(인재등용)
갑신 갑오 : 재정일원화,외세의존배격,문벌폐지,행정기구개편,경찰제
갑신 갑오 독립: 재정일원화,외세의존배격

한국사요약정리15(조선후기정치경제사회문화변화)

2008.12.04 13:22 | 국사진도핵심내용 | 빨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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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총정리 -10- 조선 후기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변화
 

Ⅰ. 정치체제의 변질
통치기구의 변화
비변사의 기능 확대, 의정부 기능 상실
군사제도의 개편(훈련도감을 근간으로 한 중앙 5군영과 지방의 속오군)
모병제 중심으로 바뀌어 농민은 군역을 1년 2필의 군포로 대신함.
붕당정치의 성숙

Ⅱ. 수취제도의 개편
토지제도와 조세제도의 개편
cf. 농지개간은 신분에 관계없이 개간자에게 소유권과 3년간 면세혜택
왜란후 토지결수는 계속해서 증가하였으나, 국가수입은 크게 늘지 않은것은, 왕실,관청,서원등 면세지가 많았고, 공법은 16c이후 무시되어 저율의 세액이 적용되어 왔기 때문이었다.

대동법 (1608-1708 광인효숙)
방납의 폐해 조정 논의는 왜란 전부터 있었다(이이<동호문답>에서 代貢收米)
실시과정: 양반지주들의 반대를 배려하며 확대,시행했기에 100년이 걸림.
내용: 1결당 미12두(포,목,錢가능), 공납中 상공만 해당(공상,진상은 존속), 선혜청에서 관장
결과: 조세의 금납화, 공인의 성장, 수공업 발달
cf. 공인: 수공업자의 상품을 받아 파는 상업자본가, 시전상인,경저리,장인 중 선발,

균역법 (1750 영조)
중종때 군적수포제 정식화: 지방관이 군역부담자에게 포를 일괄하여 받아 중앙에 올리면 군인을 고용하는 제도, 병농일치의 군역제 붕괴
16c부터 족징,인징,백골징포,황구첨정등의 폐해가 심했고, 족보매매나 공명쳡을 남발로 인하여양반의 수 급증. 잔여 농민의 부담은 오히려 가중되었다.
호포제는 대원군때 가서야 실시됨. 다만 양반의 부담이 더 적었다.
균역법의 실시: 군포를 1년에 2필에서 1필로 감소

독도
1. 지증왕때 신라 영토로 편입(우산국의 속도)
2. 조선 태종이후 관리 소홀
3. 숙종(1696)때 안용복 왜인 축출, 일본에 가서 영토 확인
4. 조선말 일본어민의 밀항, 울릉도를 송도,독도를 죽도라 부르며 자기땅이라 여김
5. 1881, 일본에 항의, 울릉도 이주 장려
6. 1901, 울릉군 승격(1900, 대한제국 울릉도에서 독도의 두 섬 죽도,석도를 관할한다는 내용 게재)
7. 러일전쟁중 일본, 독도를 영토로 편입, 1906,울릉군수에게 고시함, 외교권 박탈로 항의 못함.

제5장 조선후기의 사회,사상의 새 기운
Ⅰ. 경제,사회의 발전
농업생산력의 발달과 지주제의 변동
이앙법, 이모작, 저수지의 확대, 신작물(감자,고구마,고추,호박,인삼,연초)
지대 변화: 타조법(1/2의 정률)→도조법(정액지대), 화폐지대로서의 금납제

상품,화폐경제의 진전
공인은 독점적 도매상인 都賈로 성장
경강상인(江商)은 미곡,어물,소금, 개성의 송상은 인삼판매등의 활동,
의주의 만상은 중강후시나 책문후시에서 청과 사무역, 동래의 내상은 왜와 사무역
cf. 후시는 사무역, 개시는 공무역
사상들은 시전상인을 피해 종루,이현,칠패등에서 활동
신해통공(정조 1791): 6의전을 제외한 시전의 금난전권등 특권을 폐지
수공업,광업의 발달
자영수공업이 지역적으로 발달한 곳은 철기점,유기점,자기점,와기점 등 店村을 이루었다.
부업수공업은 직물 중심, 전업으로 바뀌기도 함.
광업은 잠채가 보편화.

노비제도의 변천
1. 현종-영조: 종천법이 종모법으로 바뀜
2. 1801,순조: 관노비(직접 궁방과 관아에서 사역하던 노비와 사노비는 제외)해방
3. 1886 노비의 신분세습법 폐지
4. 1894 사노비까지 법제적으로 해방

Ⅱ. 사상,문화의 새 기운
실학의 발생
사문난적: 윤휴, 박세당
양명학의 도입(주로 경기도 소론, 서얼): 18c초 정제두가 학문적으로 체계화(강화학파)→이광사,이충익,이긍익 등→이건방,이건창(고종때)→박은식,김택영,정인보
실학의 선구자: 이수광, 한백겸, 윤휴, 김육 등
꠆ꠏ경세치용학파: 17c 유형원, 18c초 이익, 18c말-19c초 정약용, 서유구 (주로 남인)
ꠉꠏ이용후생학파: 18c말 유수원, 홍대용, 이덕무, 박지원, 박제가 (북학파,주로 노론)
ꠌꠏ실사구시학파: 19c 김정희

국학의 융성
1. 역사학
자기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관심은 <지봉유설>에서 시작.
<성호사설>: 史家의 임무는 시세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며 단편적인 사실의 시비를 가리는 데 있지 않다는 사론을 제시하여 새로운 역사서술의 선구가 됨. 실증적, 비판적 역사서술을 제시하고 우리 역사를 체계화할 것을 주장
안정복<동사강목>:
단군에서 고려까지의 역사, 위씨조선이 아닌 마한(삼한)정통론, 독자적 정통론을 세워 체계화.
한치윤<해동역사>:
중국과 일본의 사서까지 섭렵하여 기전체로 저술, 발해고증
이긍익<연려실기술>: 기사본말체 야사
cf. 조선후기 3대역사서: <동사강목>,<해동역사>,<연려실기술>
유득공<발해고>: 만주사에 대한 관심의 총결산, 남북국시대
2. 지리서
역사지리서: 한백겸<동국지리지>, 신경준<강역고>, 정약용<아방강역고>
인문지리: 이중환<택리지>현재까지 가치를 발휘, 신경준<도로고>,<산수고>
지도: 과학적도법의 정상기<동국지도>를 바탕으로 김정호(철종)가 <청구도>,<대동여지도>를 만듬
3. 한글연구
신경준<훈민정음언해>, 황윤석<이재유고>, 유희<언문지>,<물명고>: 현대적 일반 언어학 수준, 문화적인 자아의식의 발현
4. 백과사전식 학풍
<지봉유설>, <성호사설>,

문예의 새 경향
판소리: 사대부, 민중에 모두 환영되며 보급
한문학: 박지원<허생전>,<호질>,<양반전> 꾸밈없는 문체, 풍자
사설시조: 서리출신의 김천택<청구영언>, 김수장<해동가요>이 집대성
강세황은 서양화풍(원근법)도입.

과학,기술의 발전과 서양문물의 수용
이수광: 일식,월식,벼락,조수간만 언급
김석문<역학도해>: 동양최초로 지전설 정립, 북학파에 영향
역법: 김육,김상범의 노력으로 서양식 태음력인 시헌력이 효종때 채용.
이익: 지각의 변동과 조수의 출입에 대한 과학적 견해 제시
<동국지도>는 백리척을 사용한 실측지도, <청구도>,<대동여지도>는 방안도법
세계지도: 마테오리치<곤여만국전도>, 베르비스트<곤여전도>

17c의서: 허준<동의보감>, 허임<침구경험방>
19c후반 이제마<동의수세보원>: 체질의학이론으로서 독특한 사상의학 확립.
서양의학 소개: 이익과 이규경이 아담샬<주제군징>을 수용.
정약용<마과회통>에서 종두법 소개
어업: 17c 김양식, 18c후반 냉장선 등장. 정약용<현산어보>
정약용의 거중기: 수원성의 축조와 한강주교의 설치


Ⅲ. 신종교의 유포
민간신앙의 성행
유교와 불교는 퇴색하고 세속화
<정감록>의 유포
정부에서는 무녀에게서 무세를 징수하는등 무격신앙을 공인했을 뿐 아니라, 이를 장려
천주교의 전파
이수광이 소개한 이후, 이익,안정복,신후담등 남인실학자들에 의해 주자학적 견지에서 학문적 대상으로 연구(서학)되다가, 18c후반 영조말엽부터 종교신앙으로 수용되기 시작하였다.
1783 이승훈이 최초의 영세(세례)후 중인, 상민,부녀자에게 유포됨.
cf. 1785 김범우의 집이 최초의 교회, 1845 김대건이 최초 신부

동학의 발생
철종때 경주지방의 몰락양반인 최제우가 창시
3년만에 경상도일대로 확산. 몰락양반,농민 가담. 각 교단에 접소를 두어 조직화
정부는 사교로 규정하고 동학을 금압하기 시작하여
1863 철종때 교조 최제우를 혹세무민죄로 체포하고 이듬해 처형.
대원군 집권기에 서원의 철폐와 천주교 박해를 틈타
2세 교주 최시형에 의해 교세 충청,전라도까지 확장.

Ⅳ. 양반관료사회의 파탄과 민중항쟁의 폭발
세도정치와 통치질서의 와해

세도정치의 직접적 계기는 1762년 사도세조의 사사사건을 둘러싼 시벽파의 대립에서 이미 마련.
영조때 정조를 보호해 준 홍국영의 세도는 정조 초기 일시적이었다.
정조는 시파 김조순에게 순조를 보좌하도록 유명하지만,
순조 즉위후 벽파 영조계비 김씨가 수렴청정하여 벽파가 우세
수렴청정이 끝나자 김조순이 순조의 국구(국왕의 장인)가 되어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를 실현함.
헌종때는 벽파 풍양조(조인영)씨의 세도정치.
철종때 다시 시파 안동김(김문근,흥근,좌근,병국)씨의 세도정치.

수취체제의 문란
전정,군정,환곡 3정의 문란
농민의 동태와 홍경래의 난
전국각지에서 괘서,방서사건, 화적,수적등 도적(서강단,폐사군단,유단등 조직).
1800년 경상도 인동에서 60여명의 농민이 관아를 습격한 사건을 시작으로 민란의 움직임이 계속됨.
홍경래의 난(1811 관서농민의 난): 민란의 단계를 벗어난 농민전쟁. 몰락양반,광부,영세농,일용노동자,뱃사공등 가세하여 가산에서 봉기, 4개월만에 진압됨..

민란의 전국적 확대
1862 진주민란을 시발로 3남지방을 위시한 전국각지에서 농민 봉기(임술민란)
cf. 제주도에서도 폭발적 민란 발생
민란은 대개 삼정문란이 직접적 동기. 처음에는 문서로 하다가 봉기하는 비슷한 양상과 규모.
정부는 회유책으로 선무사, 안핵사를 파견하여 농민들의 요구를 수락하여 관리를 파직,유배시켜 민심을 진정시킨 뒤 난의 주모자를 처형하는 기만적 방식을 취함.
삼정을 개선하기 위해 삼정이정청을 두었으나 삼정자체의 문제보다 운영의 개선에 초점을 두었다.
민란은 대원군 이후에도 줄기차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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