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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문화권과 지구촌의 형성
§ 1.종교와 문화의 다양성
[내용정리]
1. 종교로 구분하는 문화권
1). 종교와 문화권
① 문화권: 문화 요소룰 공유하는 일정 지역, 인접 지역 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형성
② 종교: 신성한 것들에 대한 신앙과 실천의 견고한 체 계, 문화권을 구분하는 중요한 요소
2). 각 종교 문화권의 형성
① 유교․불교 문화권: 중국의 팽창 정책, 문화교류→동 아시아 문화권 형성
② 이슬람교 문화권: 이슬람 제국의 정치적 발전, 활발 한 상업활동→이슬람 문화를 유럽, 아프리카, 동남아시아로 전파
③ 크리스트교 문화권: 그리스․로마문화 + 중세크리스 트교 →유럽 중심의 문화권 행성→ 신항로 개척 이후 전 세계로 확산
④ 힌두교 문화권: 인도인의 이민, 해상 상업 활동→ 인도차이나 반도, 동남 아시아로 확대
2. 종교 문화권의 특징과 영향
3. 종교 분쟁과 해결
1). 세계의 종교 분쟁
① 원인 : 국경선과 종교 분포의 불일치
② 특징 : 대대수 종교 분쟁이 민족 문제와 결부, 크리 스트교와 이슬람교의 대립 심화
③ 주요 분쟁 지역 : 북아일랜드. 레바논, 보스니아, 동티 모르, 인도, 팔레스타인 등
2). 종교 분쟁의 해결
① 분쟁 해결을 위한 노력 : 자문화 중심주의 탈피, 상 대주의적 관점 지향
② 대표적 사례 : 세계 종교 평화회의 개최 등
【심층학습】
□ 종교의 의미
무한하고 절대적인 신을 숭배하고 신앙하여 착한 일을 권하고 나쁜 일을 규제하며 행복을 얻고자 하는 일이다. 신의 힘을 빌려 보통 방법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인간의 불안․죽음의 문제, 심각한 고민 등을 해결하려는 것이다.
현재 세계의 종교 인구는 크리스트 교의 경우 가톨릭 9억 명, 신교 4억 명, 그리스 정교 1억 6천만 명이고, 이슬람 교는 수니 파와 시아 파를 합쳐 9억 명이다. 힌두 교는 7억 명, 불교는 3억 명 정도이다. 이러한 세계 종교 분포를 지도로 나타내면 국경선과는 전혀 다른 종교 국경선이 나타난다. 이러한 국경선과 종교 분포의 불일치는 알력과 전쟁을 낳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ꋪ 힌두 교 : 힌두 교도들은 암소를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상징이며, 생명의 모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숭배한다. 또한, 인도는 몬순이 불규칙적으로 찾아오기 때문에 한발과 기아를 종종 겪는데, 이 때 소를 없애면 토지를 경작할 수단이 사라지게 된다. 그 밖에 소는 우유를 공급해 주고 교통 수단으로 이용되는데, 특히 소의 분뇨는 비료와 연료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물에 개서 반죽을 한 후 마루에 까는 데 사용된다.
ꋪ 불교 : 불교 연꽃은 부처님의 탄생을 알리려 피었다고 전하며, 불교에서의 극락 세계에서는 모든 신자가 연꽃 위에 신으로 태어난다고 믿고 있다. 보리수는 석가가 보리수 아래에서 오랜 참선의 고행 끝에 큰 깨달음을 얻어 성도한 나무로서, 원래는 ‘발다’라는 나무였으나, ‘보리수’(깨달음의 나무)라는 이름을 얻어 전해 오고 있다.
ꋪ 크리스트교 : 가톨릭의 미사나 신교의 성찬에서 떡과 포도주는 예수 크리스트의 살과 피로 비유된다. 또한, 성경에는 예수가 자신을 ‘포도나무’로 비유하는 구절이 나온다. 따라서 포도는 크리스트 교의 전파와 함께 그 재배 지역이 확산되어 나갔다.
□ 인도에서의 힌두 교와 이슬람 교
인도는 힌두 교와 결합된 카스트 사회이다. 따라서 다른 종교로 개종하기 어려웠다. 특히, 12세기에 인도를 지배한 이슬람 정복자들은 지즈야(인두세)를 징수하는 대신에 인도 고유의 관습, 제도를 존중하여 개종을 강요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슬람 왕조의 지배 아래에서는 힌두 교의 세력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유일신 알라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는 이슬람 교의 교리에 끌려 개종하는 평민들도 많았다. 이 때문에 이슬람 교도와 힌두 교도 사이에 종교적 대립이 끊이지 않아 오랫동안 인도의 통일과 발전을 방해하였다.
□ 세계 3대 유일신 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
‘예루살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성’이라고 노래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러나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예루살렘의 옛 시가지는 프랑스 파리와 같이 예술적인 세련미를 갖추지도 못하였고, 이탈리아 로마와 같이 웅장하지도 않다. 오히려 낡고 비좁다고 하는 것이 어울릴 정도이다. 그렇다면 구예루살렘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성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 곳이 세계 3대 유일신 종교인 유대 교, 크리스트 교, 이슬람 교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이 역사의 중심 무대에 등장한 것은 기원전 1000년경에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다비드 왕이 이 곳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은 뒤였다. 그 뒤, 다비드 왕의 아들인 솔로몬 왕이 이 곳에 신을 섬기는 아름다운 성전을 건설하였고, 이로부터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의 정치적 중심지일 뿐 아니라 종교적ㆍ정신적 중심지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70년경에 로마 제국 군대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지금은 성전을 떠받치던 벽의 일부만 남아 있다. 로마군에 의해 고향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도 틈만 나면 이 벽에 찾아와서 통곡을 하였는데 이 때문에 ‘통곡의 벽’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
한편, 예루살렘은 크리스트 교와 이슬람 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예수와 마호메트가 승천하였다는 곳이 바로 예루살렘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예수가 십자가에 매어 달렸던 골고다 언덕에는 크리스트 교의 교회가 우뚝 서 있으며, 통곡의 벽 바로 위쪽에는 마호메트의 승천을 기리는 뜻에서 세운 바위의 돔이 이슬람 교의 3대 사원 가운데 하나임을 드러내듯이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다.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분쟁이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성지 예루살렘을 누가 지배하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어찌되었든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유대 교, 크리스트 교, 이슬람 교 신자들에게는 예루살렘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영원한 성지이며 꿈에도 잊지 못할 신앙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종교 분쟁
ꋪ 북 아일랜드의 종교 분쟁
17세기에 아일랜드를 식민지화한 영국은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에 신교도들을 이주시켰다. 아일랜드 인들은 격렬히 독립 운동을 펼쳐 마침내 192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였다. 그러나 북 아일랜드에서는 민족주의자들이 가톨릭 교도를 중심으로 영국의 지배에 저항한 반면, 신교도들은 계속해서 영국 인으로 살기를 희망해 양 민족 간 갈등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ꋪ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분쟁(중동 전쟁)
기원전 15세기 유대 인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주하였으나, 기원전 1세기에 로마 제국의 속국이 되면서 유대 인은 대부분 해외로 쫓겨났다. 대신 아랍 인이 1800여 년을 살아왔다.
이 곳이 국제 분쟁 지역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7년 영국이 유대 인의 협력을 얻기 위해서 팔레스타인에 유대 인의 건국을 약속했던 ‘밸푸어 선언’때문이었다. 그런데 영국은 같은 목적으로 아랍인들에게도 ‘후세인 맥마흔 협정’을 통해 팔레스타인 내 아랍인 거주 지역의 독립을 약속하였다.
이 때문에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두 민족의 대립이 격화되어 유엔은 팔레스타인 영토의 55%를 유대 인에게, 나머지를 아랍 인에게 제공하는 최종안을 결정했다. 1948년 영국이 팔레스타인 통치를 포기하고 물러나자, 아랍계의 거센 반발 속에 이스라엘이 건국되었다. 이에 대해 아랍 인들은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를 조직하여 이스라엘과 수 차례 전쟁을 치렀다.
ꋪ 이란 - 이라크 전쟁
1980년 9월 이란과 통제권을 반분하고 있던, 페르시아 만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인 샤트알 아랍 수로에 대한 완전한 소유권 인정을 이유로 이라크의 기습 선제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후세인이 이란 침략을 한 근본적인 동기는 자신의 권력 기반 구축과 이란에서 일어난 이슬람 혁명의 다른 국가로의 파급 저지, 아랍 세계의 주도권 확보라는 정치적 야망에 기반하고 있었다. 또 아랍계인 이라크가 인도-유럽어계인 이란에 느끼는 인종적 이질감 역시 양국 간 분쟁의 한 요인으로 자리한다. 결국, 이란과 이라크는 수많은 인명 피해와 산업 시설의 피해를 입은 뒤, 1988년 유엔의 결의에 의해 휴전하였다.
ꋪ 키프러스 분쟁
지중해 동부 해역에 위치한 섬나라 키프러스의 주민은 크리스트 교를 믿는 그리스계 57만 명과 터키계 12만 명으로 양분되어 있다. 지난 1974년 그리스와의 통합을 주장하는 그리스계 키프러스군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불과 1개월 후 터키가 자국민 보호를 구실로 25,000명의 군대를 파견하여, 키프러스 국토의 37%에 해당하는 북부 지역을 점령했다. 이 후, 1983년 11월에는 터키계가 압도적인 북부 주민들이 친터키 북키프러스 공화국을 일방적으로 수립하였다. 오늘날 키프러스 북부에는 29,000명의 터키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유엔 평화 유지군 2천여 명이 동서 184㎞를 가로지르며 경비하고 있다.
ꋪ 카슈미르 분쟁
인도 펀자브 북쪽에 위치한 카슈미르는 1947년 영국으로부터 인도의 파키스탄이 분리․독립할 때, 그 주민 대다수가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으로의 귀속을 원했으나 힌두 교도인 영주가 인도 귀속을 결정하여 폭동이 일어났고, 마침내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무력 충돌로 발전했다.
ꋪ 스리랑카의 불교 - 힌두 교 분쟁
스리랑카 분쟁은 19세기 영국이 차 생산을 위해 인도 남부의 타밀 족을 집단 이주시키면서 시작됐다. 독립 후에도 총 인구의 74%인 불교도 싱할리 족과 18%인 힌두 교도 타밀 족 간에 갈등이 계속되었고, 1983년 정부가 타밀 어 사용을 금지하자 본격적인 내전이 시작됐다.
ꋪ 인도네시아 암본 섬의 종교 갈등
인도네시아는 전체 인구의 90%가 이슬람 교도이지만, 암본 섬은 서구 식민지 시대의 영향으로 주민 31만 명 중 크리스트 교도가 절반을 넘는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정부는 1970년 이후 암본 섬에 다른 지역의 이슬람 교도들을 대거 이주시켜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1949년 인도네시아 독립 당시 자치 투쟁을 벌였으나 진압되었으며, 수하르토의 실각 후 다시 종교 갈등이 분출하고 있다.
□ 종교 간의 화해 사례
ꋪ 교황 요한 바오르 2세는 2000년 3월 26일 크리스트 교, 유대 교, 이슬람 교가 모두 성지로 여기고 있는 동예루살렘의 방문을 마지막으로 6일 간의 중동 성지 순례를 마쳤다. 교황은 “예루살렘은 유대 교, 크리스트 교, 이슬람 교가 형제애와 자유, 존엄과 정의 속에서 함께 살 수 있는 평화의 도시가 되어야 한다.”면서 “크리스트 교인은 내부의 반목과 분열부터 극복해 이 같은 책임을 다하라.” 고 촉구했다. 이에 앞서 “크리스트 교와 이슬람 교, 기타 종교들 사이에는 공통 분모가 존재한다.”고 밝힌 교황은, 부처님 오신 날에 세계 불교도에게 축하 메시지를 발표하기도 하고, 힌두 교를 믿는 인도와 그리스 정교회를 믿는 루마니아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ꋪ 최근 고산 조계종 총무원장은 내부적으로 승가끼리 화합하고, 대외적으로는 다른 종단 지도자들과 잇따른 만남을 통해 종교 간 대화와 화합 운동을 열성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그는 “먼저 손을 내밀면 대답이 온다. 크리스마스와 부처님 오신 날에 서로 찾아 축하하는 전통을 세우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ꋪ 한편, 한국 천주교의 김수환 추기경은 2000년 5월 24일 성균관대 설립자인 심산 김창숙(心山 金昌淑) 선생의 고유제(告由祭)를 지내기 위해 서울 수유동 북한산에 올랐다. 심산의 묘에 차려진 조촐한 제사상에 김 추기경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큰 절을 올렸다.
[탐구활동]
▶ 예루살렘을 둘러싼 이스라엘과 PLO의 갈등
* 이스라엘의 입장....예루살렘은 3,000여년전 다윗왕이 수도로 삼은 다음 이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성전을 두 번이나 건설한 절대성지이다. 따라서 누구에게도 예루살렘을 양보 할 수 없다.
* PLO의 입장....아랍권 내에서도 이슬람교 성지를 놓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알력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자신들의 입지를 보장받기 위해서 이슬람교의 3대 성지의 하나인 예루살렘에 대한 관할권을 확보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오엑스와 쓰기>
*힌두교는 브라만교와 카스트 제도에 대한 반발로 창시되었다.( )
*이슬람교에서는 돼지공기를 금식한다.( )
*팔레스타인은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종교 갈등이 심한 지역이다.
*동부 유럽은 소련 해체 이후 ( )가 고조되어 분리 독립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카슈미르 지방은 ( )와 이슬람교의 종교 분쟁 지역이다.
*동남 아시아의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는 ( )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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