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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님 너무감사 제가 숙재..
정말 알고 싶었던 내용..
좋은 정보 잘 보고 갑..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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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11/26
 

제4장. 환경문제와 지역문제
§ 3.지역차와 지역갈등

[핵심내용정리]

1. 지역 이기주의
1)님비(NIMBY)...Not in My Back Yard...자기지역에 피 해를 줄 수 있는 혐오시설을 기피하는 현상 (쓰레기 매립장, 화장장, 하수종말 처리장 등)
2)핌피(PIMFY)...Please in My Front Yard...자기지역에 이익이 되는 시설, 기능을 유치하려는 현상 (교육시설, 행정기관, 고속철도역 등)

2.지역개발에 따른 분쟁
1)물 분쟁...(터키의 아타투르크 댐...유프라테스강)
①영향...하류지역의 시리아, 이라크의 피해
②기타...하천이 여러국가에 걸쳐있는 경우(국제하천)...다 뉴브, 요르단, 유프라테스, 나일강 등
2)산업단지 조성에 따른 분쟁....(위천국가산업단지 조성)
①목적...대구지역의 경제활성화, 산업구조 개편
②영향...낙동강 오염으로 하류지역 피해우려 (부산 경남 지역)
3)문화적 차이에 의한 갈등
①원인...민족, 종교, 언어등의 문화적 차이
②주요 갈등지역과 양상
- 남아프리카...흑백 갈등(아파르트헤이트)
- 코소보 내전...민족간의 문화적 차이(알바니아의 분리 독립 운동)
- 수단 내전...종교적. 민족적 차이(이슬람정권과 기독교 반군간의 갈등)
3.지역갈등의 해결방안
①자세...상대주의적 시각으로 다른 지역의 사회.문화적 특성에 따른 상황과 입장을 이해 하려는 노력
②합리적 해결방안...양보와 타협,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방법을 모색

[심층학습]
1.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아프리칸스어로 '분리'라는 뜻)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소수 백인과 다수 유색인종의 관계를 지배했던 정책.
아파르트헤이트는 유색 인종에게 불리한 인종 분리와 정치 및 경제 면에서의 차별 대우를 인정해왔다. 1960년대부터 흔히 '분리발전정책'이라고 부르게 된 아파르트헤이트는 국민을 반투(순수한 아프리카 흑인)와 유색인(혼혈 인종) 및 백인으로 구분하는 1950년의 주민등록법으로 시행이 가능해졌다. 4번째 부류인 아시아인(인도인과 파키스탄인)은 나중에 추가되었다.

법률이 인정하는 인종분리정책은 1948년 이전에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널리 시행되었지만, 1948년에 집권한 국민당은 이 정책을 더욱 확대하면서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1950년 제정된 집단 지역법은 도시에 각 인종의 거주 구역과 업무 구역을 따로 설정했고, 정부는 이미 존재하는 '신분증소지법'(신분증을 반드시 소지해야 한다는 법률)을 더욱 강화했다. 그밖에도 인종들 사이의 거의 모든 사회적 접촉을 금지하고 인종에 따른 공공시설의 분리를 정당화하며, 별도의 교육 기준을 설정하고 인종에 따라 특정 직업을 갖는 것을 제한하며, 유색 인종의 노동조합을 축소하고, 유색 인종이 (백인 국회의원을 통하여) 중앙 정치에 참여하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는 법률들이 존재했다. 1951년 제정된 반투 정부법에 따라 정부는 아프리카 흑인을 다스릴 부족기구를 재건했고, 1959년의 반투 자치 촉진법은 10개의 아프리카 흑인 거주구역을 설정했다. 1970년에 제정된 반투 거주 구역 시민권법은 모든 아프리카 흑인을 실제 거주 구역에 관계 없이 흑인 거주 구역의 시민으로 규정함으로써 남아프리카 공화국 시민에서 모든 흑인을 배제했다. 1980년대초에는 흑인 거주구역 중 4개가 공화국으로 독립을 승인받았고, '블랙스테이트'라고 부르는 나머지 거주구역도 어느 정도의 자치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모든 흑인 거주구역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전히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의존했다. 한편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제도 유색 인종의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이 분리발전 정책을 시행하기가 어려웠으며 국내에서도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반대는 끊이지 않았다. 아프리카 흑인 단체들은 일부 백인의 지원을 받아 시위와 파업을 벌였고, 폭동과 파괴 활동도 수없이 많았다. 아프리카 흑인 학생들에게 남아프리카어를 필수적으로 배우도록 강요하려는 시도는 결국 1976년에 소웨토 폭동을 유발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국외에서도 비난을 받았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961년 영국연방에서 탈퇴할 수밖에 없었다. 1985년에는 영국과 미국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대한 선택적 제재 조치를 단행했다. 이러한 국내외적 압력 속에서 1990~91년 클레르크 대통령은 아파르트헤이트의 근간을 이루는 법률들을 대부분 폐지함으로써 보다 근본적으로 정책을 전환해갔으나 인종분리는 여전히 남아프리카사회에 구조적으로 굳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1993년의 신헌법으로 흑인과 기타 인종집단에 참정권이 부여되고 1994년 다인종총선거에서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의장인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남아프리카에서는 최초의 흑인정권이 탄생했으며 이로써 적어도 법률상으로는 아파르트헤이트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2.코소보 내전
다음은 코소보 내전에 대한 어느 신문의 내용이다.
-유럽의 화약고 발칸반도에 다시 불이 붙었다. -
3월1일 낮 신유고연방 코소보주 프레카즈의 산악마을. 저공 비행하던 두 대의 세르비아군 헬기가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로 불을 뿜었다. 잇따라 30대의 차량에서 내린 방탄복차림의 무장병사들도 마을의 집들을 샅샅이 뒤지며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향해 조준 사격했다. 이로 인해 알바니아계 주민 74명이 무참히 살해됐다. 이중에는 성폭행당한 뒤 살해된 젊은 여인, 머리가 뭉개지고 사지가 찢어진 채 죽은 청년, 조준 사격된 어린이 등 24명도 포함돼 있었다.
이날 세르비아군의 작전은 코소보 분리독립주의자들인 ‘코소보 해방군(Kosovo Liberation Army)’ 대원들이 리코산 마을을 순찰하던 세르비아 보안군 6명을 살해한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현지 외교관들은 이 보복 학살극은 유고내전 와중에서 발생했던 ‘인종청소(ethnic cleansing)’ 의 재현이라고 표현했다.
이같은 보복극이 발생하자 많은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이웃 알바니아와 마케도니아로 피난길에 나섰다. 학살된 사람들의 장례식장에는 알바니아계 주민 3만여명이 모여 세르비아인들의 인종청소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학살극이 벌어진 마을 벽에는 누군가 빨갛게 ‘모든 알바니아계 사람들을 위해’ 라는 글을 써 놓았다. 알바니아계가 전체의 3분의 1인 마케도니아에서도 이들을 추모하는 시위를 가졌다.
그러자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6개국으로 이뤄진 접촉그룹은 세르비아군의 학살행위를 규탄하면서 이를 즉각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신유고연방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은 “반군들의 뿌리를 뽑겠다” 며 이를 무시하고 있다.
코소보에서 발생한 학살극은 역사적 뿌리가 깊다. 1389년 당시 세계를 주름잡던 오스만 터키군이 코소보를 침공한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회교국가인 오스만 터키가 ‘한손에 칼과 한손에 코란’ 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기독교의 땅 코소보를 쳐들어와 세르비아를 패배시켰다. 1878년 발칸전쟁을 통해 ‘세르비아 몬테네크로왕국’ 으로 독립할 때까지 500년 가까이 코소보는 회교도들의 지배에 놓였다. 이 때문에 기독교인들의 땅인 코소보는 회교도의 땅으로 변했다. 현재 200만명에 달하는 코소보 전체인구중 세르비아계 기독교인들은 불과 20만명이다. 나머지 90%는 회교도인 알바니아계인들이다.
-코소보 해방군 조직, 인종청소 불씨 제공 -
기독교 신앙을 지키며 ‘억압받던’ 세르비아계 주민들에게 복음(福音)의 나팔소리가 들려왔다. 밀로셰비치(신유고연방 대통령)가 바로 ‘선지자’ 였다. 유고슬라비아가 분리되기 전인 87년 공산당 지도자였던 밀로셰비치는 코소보를 방문, 세르비아계 주민들에게 600년전 오스만 터키의 침공을 거론하며 “이곳은 당신들의 땅” 이라고 주문(呪文)처럼 외쳤다. 주문의 효력은 2년쯤 지난 뒤에 나타났다. 89년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밀로셰비치는 코소보 자치권을 빼앗고 알바니아계 언어 사용을 금했다. 나아가 알바니아계 사람들의 자녀의 취학마저도 금지했다. 밀로셰비치는 보스니아지역에서 피난 온 세르비아인들에게 코소보에 정착하라고 장려까지 했다.
회교도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이같은 압제를 견디다 못해 91년 밀로셰비치가 금지시킨 주민투표를 통해 자치독립을 천명했다. 하지만 밀로셰비치는 코소보에 군대를 파견하고 이 지역을 철권통치하는 것으로 답했다.
마침내 지난해에는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밀로셰비치의 압제에 저항, 봉기했다. 분리독립을 위해 ‘코소보 해방군’ 을 조직하고 세르비아군의 무기고를 습격했다. 탈취한 무기로 이들은 세르비아군에 대항했지만 달걀로 바위치기격이었다. 오히려 세르비아에게 인종청소의 불씨만 제공하는 꼴이 된 것이다. 신유고연방의 수도 베오그라드의 TV는 계속 세르비아 군인들이 코소보 해방군에게 살해된 장면과 이들의 유가족들이 흐느끼는 장면만을 보여주고 있다.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나쁘다는 점을 주지시키기 위해서다.
유엔 고등난민판무관실 대변인인 크리스 야노스키씨는 “아주 아주 위험한 시나리오” 라며 유고내전에서 벌어졌던 인종청소가 재현될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배고파서 사람을 먹기 위해 죽이지만, 문명인들은 왜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사람들을 죽이는지 모르겠다” 고 한 아프리카 식인종 추장의 말이 떠오르게 하는 인간의 추악함이 발칸반도의 한곁에서 다시 벌어지고 있다.
-뿌리깊은 식민역사 -
남슬라브족이 6세기경에 처음으로 유고지역에 건국했다. 1389년 오스만 터키가 코소보지역을 침공, 식민지가 됐다. 500년 가까이 식민생활을 하던 유고는 1878년 러시아_오스만 터키전쟁과 발칸전쟁에서 터키가 패배,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왕국으로 독립한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중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 지배하에 잠시 들어갔다가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왕국(후에 유고슬라비아 왕국 개칭)’ 으로 다시 독립한다. 2차 세계대전때 나치 독일에 점령됐다가 종전후 티토의 공산당 주도로 1945년 11월 ‘유고슬라비아 연방인민공화국’ 으로 독립한다. 80년 건국의 아버지 티토 대통령이 사망하고 80년대 말 사회주의체제가 붕괴되자 유고연방은 무너진다. 91년 6월25일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제일 먼저 분리독립을 선포하고 6월27일에는 유고연방군이 슬로베니아를 침공함으로써 유고내전이 발발한다. 유고내전은 250만명의 난민과 1만5000여명의 사망자를 낸 인류 최악의 민족분규라는 오명을 2년반 이상을 끈뒤 데이턴협정으로 휴전했다. 92년 4월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유고연방을 계승한다는 신헌법을 채택하고 ‘신유고연방’ 으로 독립한다. 유고연방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신유고연방(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코소보 보이보디나자치주) 마케도니아로 분리됐다.

□ 지역 이기주의
쓰레기 매립장과 같이 설치 필요성에 대해 누구나 공감하는 사안에 대해 사전에 여론 수렴 과정도 충분히 거쳤고, 안전 대책이나 보상 대책을 충분히 제시했는데도 무조건 우리 지역은 안되니 다른 지역에 설치하라고 할 때 그것을 지역 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다. 남비 현상, 핌피 현상이 지역 이기주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 혐오 시설
주변에 거주하는 지역 주민들에게 공포와 고통을 주며, 주변 지역의 쾌적성이 훼손됨으로써 집 값이나 땅 값이 내려가는 등 부정적인 외부 효과를 유발하는 시설을 의미하는데, 대표적인 시설은 쓰레기 매립장 및 소각장, 유류 저장소이다.

□ 종교 분쟁
민족․종족 분쟁과 종교 분쟁은 불특정 다수를 희생의 제물로 삼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분쟁은 국가 대 국가 간의 ‘고전적인 전쟁’이 아니라 양민 학살이 수반되는 게릴라전과 테러 양상을 띠고 있다.
여기에는 ‘무고하다’는 개념은 사라지고 특정 종교, 특정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적으로 간주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탐구활동]
1. 우리나라 지역감정의 발생원인에 대해 알아보자
1)문제점...선의의 경쟁을 하는 지역주의라기 보다는 정서적 거부감을 가지고 대립과 갈등을 겪고 있다.
2)원인
- 지역간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아 상대에 대한 인식 결여
- 근대화 과정에서 경부축 중심의 경제개발로 경제적.사회적 격차 심화
- 영.호남 간의 정치적 대립
3)해결방안
-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 필요
-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지방분권 확립
- 지역간의 활발한 교류
- 각 지역의 특화
- 사회.문화 단체간의 교류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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