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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11/26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던 이유

신라에는 여왕이 세 명 있었다.
선덕, 진덕, 진성 여왕이 그 주인공이다.
우리 역사에서 유일하게 여왕이 있었던 나라가 바로 신라이다.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의 힘이 특히 강했던 걸까?
여자가 나라를 다스린 경우는 고려와 조선에도 여러 번 있었다. 왕의 나이가 너무 어려 정사를 볼 수 없거나, 뭔가 특별한 이유로 왕 노릇을 할 수 없을 때 왕실의 웃어른인 대비가 잠시 정치를 대신하는 경우이다.
이를 '수렴청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수렴청정은 임시적인 일이었다. 신라처럼 여자가 직접 왕이 되는 경우와는 달랐다.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던 것은 골품제(骨品制)와 관련이 있다. 신라에는 골품제도가 있었고, 이 중 성골(聖骨)은 아버지 집안과 어머니 집안이 모두 순수한 왕족(박, 석, 김)으로 신라의 가장 으뜸가는 신분층이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보면 성골은 28대 진덕여왕 때까지 서로 같은 핏줄끼리 결혼하며 왕위를 독점하였다. 선덕 여왕은 진평왕의 맏딸인데, 진평왕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성골로 왕위를 이을 사람은 선덕 여왕뿐이었다. 뒤를 이은 진덕 여왕 역시 성골 남자가 없었기 때문에 왕이 되었다. 진덕 여왕은 선덕 여왕의 사촌이다. 진성 여왕의 경우는 조금 설명이 복잡한데, 간단히 말하면 다른 집안으로 왕위가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선택되었다.

 

그러니까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던 이유는 신라 여성들이 특별히 자유롭고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골품제라는 신분 제도 안에서 적당한 자격을 갖춘 인물을 찾다 보니 여왕이 즉위하게 된 것이다. 신라는 꼭 남자가 왕위를 잇는다는 생각보다는 핏줄이 가장 중요한 임금의 자격이었기 때문에 고려나 조선에는 없는 여왕이 셋이나 될 수 있었다. 그들은 왕자가 없으면 임금될 사람을 방계에서 찾기보다는 공주가 더 적임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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