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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11/26
 

 

무수리와 궁녀의 차이는

 


궁녀는 궁중에서 대전(大殿) ·내전(內殿)을 모시던 모든 여인들, 즉 내명부(內命婦)의 총칭으로 일반적으로는 상궁과 나인만을 의미하지만, 나인들과 그 아래 하역을 맡은 무수리·각심이·방자(房子)·의녀(醫女)·손님 등이 모두 포함된다. 한국 궁녀의 기원은 삼국시대 이후부터 비롯되었다. 넓은 의미의 궁녀에 포함되는 무수리는 각 처소에서 막일을 담당하는 여인들이다. 또 각심이는 상궁이 비번 날 살게 되는 개인의 처소에서 부리던 가정부·식모·찬모 등의 총칭이다. 이들의 월급은 국가에서 지불하였으므로 방자라고도 한다.


이 외에 손님은 왕의 후궁으로서 당호가 바쳐지고 독립세대를 영위하는 여인의 집에서 살림을 맡아하던 일종의 가정부에 해당된다. 이런 의미로 볼 때 손님이라는 이름은 궁 밖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다른 궁중의 시녀들, 곧 무수리나 각심이 등과는 다르게 예의를 갖추어 주는 말로 보인다. 다음으로 의녀란 궁중의 내의원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이다. 좁은 의미의 궁녀라고 일컫는 나인과 상궁도 구분이 명백하였다.


보통 궁녀에는 3가지 등급이 있었는데, 상궁·나인·애기나인으로 나누어졌다. 그러나 이들도 입궁시기와 소속부서에 따라서 격의 높낮이에 차이가 있고, 그들 나름대로 위계질서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것이 상궁이었다. 상궁 밑으로는 나인이 있었으며, 이들의 역할은 상궁과 거의 같았으나, 주로 상궁의 보조역할을 하였다. 나인 아래에는 애기나인이 있었는데, 이들은 아기나인 또는 생각시라고도 하였다.


궁녀의 출신계급은 지밀(至蜜)과 침방(針房)·수방(繡房)은 중인계급, 기타는 상인계급이다. 입궁연령은 지밀이 가장 어린 4∼8세, 침방과 수방은 6∼13세, 그 외에는 12∼13세가 일반적이었다. 궁녀는 20세 전후에 계례를 치르고 정식 나인이 되었다. 나인이 된 후에는 15년이 경과되어야 상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데, 왕의 후궁이 되면 20대 상궁이 될 수도 있었다. 이런 궁녀는 왕의 자손을 낳기 전에는 상궁으로 머물게 되지만, 대신 궁녀의 기본적 임무는 주어지지 않고 왕의 시중만 전담하게 되었다. 이 경우를 승은상궁(承恩尙宮)이라 일컫는데, 이들이 왕의 자녀를 낳게 되면 종6품 숙의(淑儀) 이상으로 봉해지고 독립세대를 구성하게 되었다.


궁녀는 실제로 왕족들이 자신들의 생활상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존재였다. 궁궐 내의 모든 궁녀들은 입궁에서 퇴출까지 원칙적으로 종신제였다. 그러나 중병 또는 가뭄으로 궁녀방출이 이루어지거나 모시고 있던 상전이 죽는 경우에는 중도에서 궁궐을 나갈 수 있었다



무수리는 고려 ·조선시대 궁중에서 청소 일을 맡은 여자종으로 수사(水賜)라고도 한다. 수사이(水賜伊) ·무수리는 원래 몽골어로 ‘소녀’라는 뜻이다. 고려 말기 원(元)나라의 대고려 속국정책(對高麗屬國政策)에 따라 원나라 ·고려의 왕실이 통혼(通婚)을 하고, 원나라 공주가 고려 왕실에 들어오면서부터 몽골풍습과 몽골어가 사용되어, 여자종을 무수리라 부르게 되었다. 이후 조선에 이어져 궁중용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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