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국권회복운동의 전개
Ⅰ. 민족의 수난 일제의 무단통치 중추원: 총독부의 자문기관, 황족과 고관들을 예우하기 위한 형식적 기구, 친일인사로 구성되었으며 의장(정무총감)의 허가 없이 발언할 수 없었으며, 3.1운동때까지 한 번도 소집되지 않았다. 의병운동은 1915년까지 산발적으로 일어나다가 만주,연해주로 옮기게 됨.
토지의 약탈 1910 토지조사국 설치, 1912 토지조사령, 1918까지 토지조사사업 실시, 동양척식회사 등을 통해 토지 약탈(총독부 토지 소유 전국의 40%)
1910년대 해외의 민족운동 신흥무관학교(1919): 만주, 독립군의 기간요원 양성, 일본의 침략 비판, 대한광복군정부(1914): 블라디보스톡, 이상설 정통령, 이동휘 부통령, 대한국민의회(1919)로 이어짐 미국: 하와이에 국민회(대한인국민회), LA에 흥사단(1913, 신민회 후신)
3.1운동의 배경 일본 조선청년독립단의 2.8 독립선언(1919), 민족자결주의 등
3.1운동의 전개 민족대표33인은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 탑골공원에서는 시민과 학생들이 모여 낭독 후 시위에 들어감. 4월말까지 계속 의의: 전통사회의 전근대적 성격을 일소시키는 중요한 계기, 상해임정 수립 촉구
Ⅲ. 식민지통치체제의 변화 문화정치의 표방 식량의 약탈 산미증식계획: 일본의 농업공황(1934)때까지 계속, 쌀중심의 파행적인 경제구조화 소작쟁의: 1921이후 해마다 증가하여 1930년 전후로 최고조, 항일민족운동의 성격을 띠어갔다. 노동쟁의: 소작쟁의와 함께 1930년대초 절정
민족말살정책 만주사변(1931),중일전쟁(1937),태평양전쟁(1941)을 거치며 민족말살정책, 병참기지화: 국민징용령,학도지원병제도,징병제도, 여자정신대근무령,內鮮일체,조선어학회,진단학회해산,한글언론지폐간,창씨개명 등
Ⅳ. 민족운동의 새 단계
학생운동 6.10만세운동(1926): 순종인산일, 조선공산당 주도, 새로운 활력 광주학생운동(1929): 독서회의 활동에서 비롯, 전국 확산
사회운동 1918 이르크츠크 공산당한인지부와 하바로브스크 한인사회당 결성 1925년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가 조직됨.
신간회(1927-1931) -사회주의계와 민족주의계의 통합, 공식적 조직 -3대강령: 1.정치적,경제적 각성/ 2.단결/ 3.기회주의(자치운동)의 배격 -한국인 착취기관의 철폐, 한국인에 대한 특수취체법의 폐지, 교육차별의 금지, 한국어교육의 실시, 과학사상연구의 자유 등 주장 -광주학생운동시 진상조사단 파견, 방계조직으로 여성단체인 근우회 조직
민족문화의 수호운동 1907국문연구소→1921조선어연구회→1931조선어학회→한글학회 조선어학회: 한글맞춤법통일안(1933), 이승희,최현배 등, 브나로드운동과도 연결,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해산(1942) ꠆ꠏ민족주의사학(박은식,신채호→정인보,문일평,장도빈,안재홍) ꠉꠏ사회경제사학(백남운,전석담→북한) ꠌꠏ실증주의사학(최남선,안확→이병도→남한)
박은식: <한국痛史>근대이후의 일본의 침략과정, <한국독립운동지혈사>, 민족정신을 ‘혼’이라하여 혼이 담긴 역사의 중요성 강조 신채호: 주로 고대사연구에 치중, <조선상고사>,<조선사연구초>, 역 역사를 ‘我와 非我의 투쟁의 기록’, 민족주의사학의 기반을 확립 정인보: <조선사연구>, ‘얼’ 강조 장도빈: <조선사상사>, 발해사도 연구 안재홍: <조선상고사감>, 신민족,신민주주의, 민족‘정기’ 강조 최남선: <조선역사>, 불함문화론 이병도: 실증사학자들이 함께 모인 진단학회 조직(1934) > 문학사조(1919-30‘s초): 자연,사실,퇴폐,낭만,민족,계급,순수 1930년대에는 일제의 탄압으로 민족주의,사회주의문학은 모두 위축되고 순수문학이 대두하였으나 그나마도 일제말기에는 탄압을 받았다.
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독립군의 활동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 수립: 연해주,상해,한성에서 수립된 3개의 임시정부가 한성정부의 정통성을 계승 상해에서 수립, 3권분립의 원칙위에 대통령제와 내각책임제를 절충,
활동: 기관지<독립신문>, <한일관계사료집>발행, 김규식을 전권대사로 파리강화회의 파견, 미국에 구미위원부, 연통제로 본국과 연락, 독관,군감,면감등 비밀행정조직으로 자금전달, 광복군편성 중국군과 합동하여 항일전쟁
무장독립운동의 전개 1. 1920년대 봉오동전투(1920):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500명 사상 청산리전투(1920): 김좌진의 북로군정서, 1200명 사살 경신참변(1920): 일본군의 한국민 대대적 학살 자유시(흑하)참변(1921): 러시아와 연결하려다 일본의 요청을 받은 러시아 적군에 의해 무장해제를 당하고 많은 독립군이 희생됨.
2. 1930년대 한국독립당예하 한국독립군, 조선혁명당예하 조선혁명군 주축 한국국민당+조선혁명당+한국독립당→한국독립당(1940) 3. 1940년대 광복군(1940): 지청천(이청천)사령관, 이범석 참모장, 1941 대일,대독선전포고, 대일전쟁에 연합군과 참가(참가결정은 임정에서 1937년에 함), 대적선전,포로,심문,선전전단의 작성,암호문해독 등 다양한 작전 수행, 국내정진작전(1945.9) 계획
1945년 원폭투하와 일본 관동군의 붕괴등으로, 일본의 예상보다 빨리 항복하여 이워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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