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침략과 국권수호운동 Ⅰ. 독립협회의 활동과 대한제국 열강의 이권침탈 아관파천(1896): 러시아공사가 베베르에서 스피에르로 바뀐 후, 이범진 등이 베베르와 공모하여 고종을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기고, 이범진,이완용 등의 친러내각을 세움. 이 때 김홍집,어윤중은 친일파로 지목되어 일반 민중에게 살해됨.
독립협회의 활동 결성: 1896, 서재필,윤치호,이상재,남궁억 등 각층 인사들이 참여. 1. 자주독립운동: 독립문(국민성금), <독립신문>, 독립관에서 토론회, 고종환궁요구, 이권회복주장 2. 자강혁신운동: 입헌군주제, 각종제도의 근대화, 신교육, 근대적 산업개발, 국방력강화 주장 3. 자유민권운동: 천부인권사상을 근거로 생존권과 재산권 보호, 참정권운동(언론과 집회의 자유권, 국민평등권, 국민주권론), 중추원을 개편, 관선의원과 민선의원을 구성하되 독립협회회원을 민선의원에 선출하고자 시도 만민공동회: 국정의 개혁을 실현시키기 위한 민중의 정치운동, 정부의 고관도 참여한 가운데 헌의6조를 채택하고 고종에게 건의하여 그 실시를 약속받음. 해산: 정부는 보부상을 중심으로 어용단체인 황국협회를 조직, 독립협회를 탄압한 뒤, 사회혼란을 이유로 해산시켰다(1898, 만민공동회는 1889까지 존속)
대한제국의 성립과 광무개혁 대한제국: 1897, 고종이 환궁하자 국호를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 갑오개혁에서 ‘대군주’라 칭했던 왕을 ‘황제’라 고쳐 체제 정비 광무개혁(舊本新參의 방향)과 대한제국의 정책 -복고주의 성격이 강해 황제권의 강화가 강조(1899 대한국제에 잘 나타남), 황제의 전제권을 법제적으로 확립.
--청과 통상조약(1899)으로 전근대적 관계 청산, 국제적 지위 대등 -북간도관리사를 파견하여 간도를 영토로 편입할 계획을 하기도. →광무개혁의 부정적 견해: 친러세력 집권에 의한 자주성의 한계, 집권세력의 보수성, 독립협회 활동 억압 등
cf. 간 도 1712 백두산 정계비(토문) 1883 어윤중 서북경략사 1885 이중하 토문감계사(토문=도문 주장) 1903 이범윤 간도관리사 1909 간도협약: 日통감부가 청에 간도를 주고 안봉선 철도부설권을 가져옴.
Ⅱ. 일제의 국권침탈과 의병운동 러일전쟁과 일제의 침략 . 러일전쟁 발발(1904.2): 대한제국은 국외중립을 선언 제1차한일협약(1904.8): 일본인 외교고문과 외국인 외교고문(스티븐스) ‘고문정치’ 가쓰라,태프트밀약(1905.7):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하고 한국지배를 인정받음 제2차영일동맹(1905.8): 한국에 있어서 정치,경제,군사상 특수이익을 보장받음 포츠머스 강화조약(1905.9): 전쟁후 러일간 조약으로 미국이 중재, 한국에 대한 우선권 인정.
일제의 주권침탈 1904년 일본은 송병준,이용구 등을 사주하여 일진회란 친일단체를 만들게 함. 제2차한일협약(을사조약, 1905.11): 외교권 박탈, ‘통감정치’, 초대통감 이또 고종의 헤이그 밀사사건(1907): 네덜란드 만국평화회의, 이준,이상설,이위종. 일본은 이것을 문제삼아 고종을 퇴위시킴(순종즉위, 연호융희) 기유각서(1909): 사법권 강탈 1910.6 경찰권 박탈 후, 1910.8 주권박탈(경술국치, ‘총독정치’) cf. 박탈과정: 재정권→외교권→행정권→군사권→사법권→경찰권→주권 cf. 1907.7사건: 헤이그밀사→고종퇴위→한일신협약→군대해산
민족의 저항 1904 황무지개척권 요구때 보안회를 조직하여 반대여론을 일으켜 철회시킴 을사조약후: 장지연<황성신문>시일야방성대곡, 민영환,조병세,홍만식 등 자결, 나철,오기호 5적암살단 조직
군대해산과 의병운동의 확대 정미의병: 각층 포함, 해산군 합류로 전력강화, 공격대상이 진위대나 친일인사가 아닌 일본군이 되었다는 점도 큰 변화. 창의군 결성: 의병의 전국적 조직, 13도 총대장 이인영, 군수장 허위 서울진공작전(1908.1): 이인영 부친상(불효는 곧 불충이라)으로 실패, 창의군해산 이후 의병은 1909년까지 활동하다가 일본의 초토화작전으로 간도나 연해주로 이동, 독립군에 합세하였고 국내 활동은 계속되지 못하였다.
Ⅲ. 애국계몽운동의 전개 경제자립운동 국채보상운동(1907): 부인단체,신민회,언론기관 주도 모금운동 .
정치,사회단체의 활동 보안회(1904): 협동회로 개칭 진명회(1904): 보부상의 자성단체, 공진회로 개칭 헌정연구회(1905): 입헌의회제도 주장, 장지연 등에 의해 대한자강회로 개편 대한자강회(1906): 전국에 지회를 두고 연설회, 월보간행, 사회문화운동, 고종퇴위 반대운동, 해산 뒤 대한협회(1907)로 활동 계속. 신민회(1907): 안창호,이동영,양기탁,이승훈 등 <대한매일신보>기관지, 해외독립운동기지 건설 105인사건(1911): 안명근의 데라우찌 총독 암살미수사건을 날조하여 윤치호,양기탁,이승훈 등 신민회 간부 105명을 구속하자, 신민회 활동이 중단됨.
민족교육운동 원산학사와 동문학(1883): 최초의 근대적 학교, 원산학사는 신지식과 외국어를 교습한 사립학교, 동문학은 외아문이 영어교습기관으로 세운 것 육영공원(1886): 최초의 현대식 관립학교, 미국인교사를 초빙하여 양반자제를 교습했으나 교육열의 부족과 부적응으로 1894 폐지됨. 사립학교설립: 이용익 보성학교(1905), 이상설 간도 서전서숙(1906), 안창호 평양 대성학교와 정주 오산학교(1907) 등. 일제는 사립학교령(1908)으로 통제.
국학운동과 신문학 이당시 국사연구는 근대역사학으로서의 과학적 기반 구축에는 미치지 못하였으나 민족주의사학의 기반을 확립(장지연,신채호,박은식등)하였다.
신채호<독사신론>: 1905년 이후에는 종래 편년체적 서술방식에서 벗어나 근대적 역사서술체로 발전하였는데 일본중심으로 서술된 문제점이 있었다. 이러한 점을 지적하고 민족주의 역사학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 이 책이다.
국어연구: 유길준<조선문전>주시경<국어문법>,<국어문전음학>, cf. 유길준<서유견문>(1889)은 새로운 국한문체의 보급에 공헌, 최초 언문일치체 국문연구소(1907): 학부안에 설립, 한글창제이후 최초의 국문연구 국가기관, 조선어학회의 모체
종교계의 계몽활동 천주교: 일반민중과 천주교도간의 충돌이 발생하기도(1901, 제주도 등) 개신교: 알렌의 광혜원(1885, 최초 서양의술시행), 언더우드,아펜셀러 등 학교건립 유교: 박은식의 유교구신론(국민적 자립과 부국강병을 위한 교육의 진흥) 불교: 한용운<조선불교유신론> 미신적요소 배격과 불교의 쇄신, 학교,병원 건립 천도교: 친일파가 동학을 흡수하려 하자 1905 손병희가 천도교로 개칭, <만세보>간행 등 민족운동 대종교: 1909 나철이 단군신앙을 발전시켜 창립, 보수적이었으나 2대교주 김교헌은 교단의 총본사를 만주로 옯겨 간도,연해주 등의 해외항일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면서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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