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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님 너무감사 제가 숙재..
정말 알고 싶었던 내용..
좋은 정보 잘 보고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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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요약정리15(조선후기정치경제사회문화변화)

2008.12.04 13:22 | 국사진도핵심내용 | 빨갱이

http://kr.blog.yahoo.com/bchs9027/1435 주소복사

한국사 총정리 -10- 조선 후기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변화
 

Ⅰ. 정치체제의 변질
통치기구의 변화
비변사의 기능 확대, 의정부 기능 상실
군사제도의 개편(훈련도감을 근간으로 한 중앙 5군영과 지방의 속오군)
모병제 중심으로 바뀌어 농민은 군역을 1년 2필의 군포로 대신함.
붕당정치의 성숙

Ⅱ. 수취제도의 개편
토지제도와 조세제도의 개편
cf. 농지개간은 신분에 관계없이 개간자에게 소유권과 3년간 면세혜택
왜란후 토지결수는 계속해서 증가하였으나, 국가수입은 크게 늘지 않은것은, 왕실,관청,서원등 면세지가 많았고, 공법은 16c이후 무시되어 저율의 세액이 적용되어 왔기 때문이었다.

대동법 (1608-1708 광인효숙)
방납의 폐해 조정 논의는 왜란 전부터 있었다(이이<동호문답>에서 代貢收米)
실시과정: 양반지주들의 반대를 배려하며 확대,시행했기에 100년이 걸림.
내용: 1결당 미12두(포,목,錢가능), 공납中 상공만 해당(공상,진상은 존속), 선혜청에서 관장
결과: 조세의 금납화, 공인의 성장, 수공업 발달
cf. 공인: 수공업자의 상품을 받아 파는 상업자본가, 시전상인,경저리,장인 중 선발,

균역법 (1750 영조)
중종때 군적수포제 정식화: 지방관이 군역부담자에게 포를 일괄하여 받아 중앙에 올리면 군인을 고용하는 제도, 병농일치의 군역제 붕괴
16c부터 족징,인징,백골징포,황구첨정등의 폐해가 심했고, 족보매매나 공명쳡을 남발로 인하여양반의 수 급증. 잔여 농민의 부담은 오히려 가중되었다.
호포제는 대원군때 가서야 실시됨. 다만 양반의 부담이 더 적었다.
균역법의 실시: 군포를 1년에 2필에서 1필로 감소

독도
1. 지증왕때 신라 영토로 편입(우산국의 속도)
2. 조선 태종이후 관리 소홀
3. 숙종(1696)때 안용복 왜인 축출, 일본에 가서 영토 확인
4. 조선말 일본어민의 밀항, 울릉도를 송도,독도를 죽도라 부르며 자기땅이라 여김
5. 1881, 일본에 항의, 울릉도 이주 장려
6. 1901, 울릉군 승격(1900, 대한제국 울릉도에서 독도의 두 섬 죽도,석도를 관할한다는 내용 게재)
7. 러일전쟁중 일본, 독도를 영토로 편입, 1906,울릉군수에게 고시함, 외교권 박탈로 항의 못함.

제5장 조선후기의 사회,사상의 새 기운
Ⅰ. 경제,사회의 발전
농업생산력의 발달과 지주제의 변동
이앙법, 이모작, 저수지의 확대, 신작물(감자,고구마,고추,호박,인삼,연초)
지대 변화: 타조법(1/2의 정률)→도조법(정액지대), 화폐지대로서의 금납제

상품,화폐경제의 진전
공인은 독점적 도매상인 都賈로 성장
경강상인(江商)은 미곡,어물,소금, 개성의 송상은 인삼판매등의 활동,
의주의 만상은 중강후시나 책문후시에서 청과 사무역, 동래의 내상은 왜와 사무역
cf. 후시는 사무역, 개시는 공무역
사상들은 시전상인을 피해 종루,이현,칠패등에서 활동
신해통공(정조 1791): 6의전을 제외한 시전의 금난전권등 특권을 폐지
수공업,광업의 발달
자영수공업이 지역적으로 발달한 곳은 철기점,유기점,자기점,와기점 등 店村을 이루었다.
부업수공업은 직물 중심, 전업으로 바뀌기도 함.
광업은 잠채가 보편화.

노비제도의 변천
1. 현종-영조: 종천법이 종모법으로 바뀜
2. 1801,순조: 관노비(직접 궁방과 관아에서 사역하던 노비와 사노비는 제외)해방
3. 1886 노비의 신분세습법 폐지
4. 1894 사노비까지 법제적으로 해방

Ⅱ. 사상,문화의 새 기운
실학의 발생
사문난적: 윤휴, 박세당
양명학의 도입(주로 경기도 소론, 서얼): 18c초 정제두가 학문적으로 체계화(강화학파)→이광사,이충익,이긍익 등→이건방,이건창(고종때)→박은식,김택영,정인보
실학의 선구자: 이수광, 한백겸, 윤휴, 김육 등
꠆ꠏ경세치용학파: 17c 유형원, 18c초 이익, 18c말-19c초 정약용, 서유구 (주로 남인)
ꠉꠏ이용후생학파: 18c말 유수원, 홍대용, 이덕무, 박지원, 박제가 (북학파,주로 노론)
ꠌꠏ실사구시학파: 19c 김정희

국학의 융성
1. 역사학
자기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관심은 <지봉유설>에서 시작.
<성호사설>: 史家의 임무는 시세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며 단편적인 사실의 시비를 가리는 데 있지 않다는 사론을 제시하여 새로운 역사서술의 선구가 됨. 실증적, 비판적 역사서술을 제시하고 우리 역사를 체계화할 것을 주장
안정복<동사강목>:
단군에서 고려까지의 역사, 위씨조선이 아닌 마한(삼한)정통론, 독자적 정통론을 세워 체계화.
한치윤<해동역사>:
중국과 일본의 사서까지 섭렵하여 기전체로 저술, 발해고증
이긍익<연려실기술>: 기사본말체 야사
cf. 조선후기 3대역사서: <동사강목>,<해동역사>,<연려실기술>
유득공<발해고>: 만주사에 대한 관심의 총결산, 남북국시대
2. 지리서
역사지리서: 한백겸<동국지리지>, 신경준<강역고>, 정약용<아방강역고>
인문지리: 이중환<택리지>현재까지 가치를 발휘, 신경준<도로고>,<산수고>
지도: 과학적도법의 정상기<동국지도>를 바탕으로 김정호(철종)가 <청구도>,<대동여지도>를 만듬
3. 한글연구
신경준<훈민정음언해>, 황윤석<이재유고>, 유희<언문지>,<물명고>: 현대적 일반 언어학 수준, 문화적인 자아의식의 발현
4. 백과사전식 학풍
<지봉유설>, <성호사설>,

문예의 새 경향
판소리: 사대부, 민중에 모두 환영되며 보급
한문학: 박지원<허생전>,<호질>,<양반전> 꾸밈없는 문체, 풍자
사설시조: 서리출신의 김천택<청구영언>, 김수장<해동가요>이 집대성
강세황은 서양화풍(원근법)도입.

과학,기술의 발전과 서양문물의 수용
이수광: 일식,월식,벼락,조수간만 언급
김석문<역학도해>: 동양최초로 지전설 정립, 북학파에 영향
역법: 김육,김상범의 노력으로 서양식 태음력인 시헌력이 효종때 채용.
이익: 지각의 변동과 조수의 출입에 대한 과학적 견해 제시
<동국지도>는 백리척을 사용한 실측지도, <청구도>,<대동여지도>는 방안도법
세계지도: 마테오리치<곤여만국전도>, 베르비스트<곤여전도>

17c의서: 허준<동의보감>, 허임<침구경험방>
19c후반 이제마<동의수세보원>: 체질의학이론으로서 독특한 사상의학 확립.
서양의학 소개: 이익과 이규경이 아담샬<주제군징>을 수용.
정약용<마과회통>에서 종두법 소개
어업: 17c 김양식, 18c후반 냉장선 등장. 정약용<현산어보>
정약용의 거중기: 수원성의 축조와 한강주교의 설치


Ⅲ. 신종교의 유포
민간신앙의 성행
유교와 불교는 퇴색하고 세속화
<정감록>의 유포
정부에서는 무녀에게서 무세를 징수하는등 무격신앙을 공인했을 뿐 아니라, 이를 장려
천주교의 전파
이수광이 소개한 이후, 이익,안정복,신후담등 남인실학자들에 의해 주자학적 견지에서 학문적 대상으로 연구(서학)되다가, 18c후반 영조말엽부터 종교신앙으로 수용되기 시작하였다.
1783 이승훈이 최초의 영세(세례)후 중인, 상민,부녀자에게 유포됨.
cf. 1785 김범우의 집이 최초의 교회, 1845 김대건이 최초 신부

동학의 발생
철종때 경주지방의 몰락양반인 최제우가 창시
3년만에 경상도일대로 확산. 몰락양반,농민 가담. 각 교단에 접소를 두어 조직화
정부는 사교로 규정하고 동학을 금압하기 시작하여
1863 철종때 교조 최제우를 혹세무민죄로 체포하고 이듬해 처형.
대원군 집권기에 서원의 철폐와 천주교 박해를 틈타
2세 교주 최시형에 의해 교세 충청,전라도까지 확장.

Ⅳ. 양반관료사회의 파탄과 민중항쟁의 폭발
세도정치와 통치질서의 와해

세도정치의 직접적 계기는 1762년 사도세조의 사사사건을 둘러싼 시벽파의 대립에서 이미 마련.
영조때 정조를 보호해 준 홍국영의 세도는 정조 초기 일시적이었다.
정조는 시파 김조순에게 순조를 보좌하도록 유명하지만,
순조 즉위후 벽파 영조계비 김씨가 수렴청정하여 벽파가 우세
수렴청정이 끝나자 김조순이 순조의 국구(국왕의 장인)가 되어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를 실현함.
헌종때는 벽파 풍양조(조인영)씨의 세도정치.
철종때 다시 시파 안동김(김문근,흥근,좌근,병국)씨의 세도정치.

수취체제의 문란
전정,군정,환곡 3정의 문란
농민의 동태와 홍경래의 난
전국각지에서 괘서,방서사건, 화적,수적등 도적(서강단,폐사군단,유단등 조직).
1800년 경상도 인동에서 60여명의 농민이 관아를 습격한 사건을 시작으로 민란의 움직임이 계속됨.
홍경래의 난(1811 관서농민의 난): 민란의 단계를 벗어난 농민전쟁. 몰락양반,광부,영세농,일용노동자,뱃사공등 가세하여 가산에서 봉기, 4개월만에 진압됨..

민란의 전국적 확대
1862 진주민란을 시발로 3남지방을 위시한 전국각지에서 농민 봉기(임술민란)
cf. 제주도에서도 폭발적 민란 발생
민란은 대개 삼정문란이 직접적 동기. 처음에는 문서로 하다가 봉기하는 비슷한 양상과 규모.
정부는 회유책으로 선무사, 안핵사를 파견하여 농민들의 요구를 수락하여 관리를 파직,유배시켜 민심을 진정시킨 뒤 난의 주모자를 처형하는 기만적 방식을 취함.
삼정을 개선하기 위해 삼정이정청을 두었으나 삼정자체의 문제보다 운영의 개선에 초점을 두었다.
민란은 대원군 이후에도 줄기차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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