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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님 너무감사 제가 숙재..
정말 알고 싶었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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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11/26
 

한국사요약정리14(조선시대대외관계,사림세력)

2008.12.04 13:20 | 국사진도핵심내용 | 빨갱이

http://kr.blog.yahoo.com/bchs9027/1434 주소복사

한국사 요약 정리 -14- 조선시대 대외관계, 사림

Ⅳ. 조선전기의 대외관계
명과의 관계
명에 대한 사대를 천명하고 동아시아의 국제질서 속에 편입되어
조선은 스스로를 소중화라고 자처하였다.

북방민족과의 관계
세종의 북방개척: 김종서의 두만강 6진, 최윤덕,이천의 압록강 4군으로 국경확보

일본과의 관계
세종때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
중종때 3포왜란과 임신조약(세견선1년25척,세사미100석)
중종때 사량진왜변과 정미조약
명종(1555)때 을묘왜란
cf. 비변사는 중종때 설치하여 을묘왜란때 상설기구화되었다.

제3장 사림정치와 대외항쟁
Ⅰ. 사림세력의 대두와 사림정치
경제변동과 훈척계열의 보수화
농장확대와 공납,부역제의 동요로 유민과 도적이 창궐(1559 황해도 임꺽정의 난)

사림의 대두와 사화
cf. 사림파의 계보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김일손,정여창,김굉필-
꠆ꠏ이언적-이 황(조식과 분계)-유성룡,김성일,정구 (주리파,동인,영남)

ꠌꠏ서경덕(조광조)-이 이(성혼,안익필)-김장생,정엽 (주기파,서인,기호)

사림의 본격적 정계진출은 15c말 성종대 김종직으로 시작, 김일손,정여창,김굉필이 뒤를 이음.
1. 무오사화(연)
훈척계는 ‘김종직의 사초<조의제문>’이 세조의 즉위를 비난한 것이라 트집잡아
김일손등 다수의 신진사림을 숙청.
2. 갑자사화(연)
훈척의 대립. 척신들이 ‘연산군의 생모인 유씨의 폐비사사사건’을 구실로 훈신들을 몰아냄.
3. 기묘사화(중)
훈신들이 ‘위훈삭제사건’을 구실로 조광조등 사림을 대거 숙청.
cf. 조광조: 향약 처음 보급, 현량과를 실시하여 사림 등용, 도교 및 민간신앙 배격(소격서 폐지)
4. 을사사화(명)
중종의 두 이복왕자를 둘러싼 외척 ‘대윤과 소윤의 대립’. 인종 즉위로 대윤이 승리하는 듯,
인종이 1년만에 죽어 명종 즉위로 소윤이 승리하여, 소윤이 대윤측에 보복. 사림도 피해.

성리학의 발달과 서원,향약
이황: 동방의 주자, 일본유학에 지대한 영향
최초의 서원: 중종때 풍기군수 주세붕이 안향을 모시기 위해 세운 백운동서원.
명종때 이황의 주청에 의해 소수서원이라는 편액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의 효시가 됨.
서원은 서적,노비,토지를 지급받고 면세,면역혜택.

사창: 고려 의창이 관설인데 비해 사창은 유향품관의 경제적 원천에 이용된 민간자치기구,
기능은 의창과 같은 농민 진휼.
향약 보급: 훈척계가 유향소를 장악하여 지방통제수단으로 역이용하자 사림은 사마소를 세워 대항하거나 유향소 폐지운동을 벌이다가, 서원과 함께 향촌자치기구로서 향약의 보급을 시작함. 선조때 전국적 시행.

붕당정치의 시작 (붕당정치계보 참조)

Ⅱ. 外族에 대한 항쟁
임진왜란
진관체제가 해이해져 을묘왜란후 바뀐 제승방략체제의 제도적 결함으로 초기 패배
(진관체제는 자전자수하는 전술,
제승방략은 유사시에 본진을 떠나 지정된 방위지역에 집결하여 중앙군의 지휘를 받는 방식)
후방지역에는 군사가 없어 일차방어선이 무너지면 그 뒤를 막을 방도가 없었다).

이순신: 왜군의 수륙협공작전 봉쇄, 전라도 곡창지대 보존
의병: 조헌,곽재우,고경명,김천일,정문부,휴정(서산대사),유정(송운대사)등
왜란 발발 2개월 후부터는 조선군의 우세 속에 전란이 진행되었다.
임진왜란 3대대첩: 한산대첩(이순신),진주대첩(김시민),행주대첩(권율)
정유재란(1597): 조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명과 왜군 사이에 진행되던 화의는 결렬되고 왜군이 다시 공격을 시작함. 1598에 종전.


왜란의 영향
절강병법 도입, 비격진천뢰나 화차등 무기 발달
납속책 시행등으로 신분제 동요. 비변사 강화
1607 선조때 조선은 왜와 곧바로 국교를 회복하고 이후 통신사를 파견하는 등 메이지유신때까지 평화적 관계 유지.

병자호란
광해군: 북인등용, 신중한 중립외교, 군사훈련 강화, 양전사업과 호적정리
인조반정(1623)으로 서인 집권후 친명배금의 외교노선
이괄의 난(1624)을 구실로
후금은 정묘호란(1627)을 일으켜 인조는 강화로 피난후 화의를 맺고 형제의 맹약을 맺음.
병자호란(1636): 청은 군신관계를 요구하며 공격,인조가 항복.
효종: 북벌이 국시로서 계획됨, 청의 요구로 러시아군 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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