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란과 무신정권
Ⅰ. 귀족사회의 동요와 무신란 귀족정치의 전개 고려의 귀족정치는 문종때 전성기로, 숙종,예종대까지 전성이 이어짐 예종: 문무양학을 함께 일으키려 함(무과,무학재), 7재, 양현고, 속현에 감무(이후 감무는 불완전한 지방조직을 보충함)를 두어 유민을 안무, 구제도감과 혜민국 인종: <삼국사기>편찬명령, 경사6학과 향학, 동서대비원과 제위보,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등으로 귀족사회 동요
귀족사회의 붕괴 이자겸의 난(1126): 척준경에 의해 축출, 인주이씨 몰락 묘청,백수한,정지상등 서경세력은 서경에 대화궁을 짓고 칭제건원을 내세우며 금국정벌까지 주장. 풍수지리설을 이용 사대적 개경의 문벌귀족정치에 반대 묘청의 난(1135): 국호 대위, 연호 천개, 스스로를 천견충의군이라 칭함, 김부식의 관군에게 1년만에 진압됨. <고려사>는 묘청을 반역전에 편입, 신채호 이후 긍정적 평가
무신란의 발생 귀족정권의 천무정책에도 불구하고 무반의 현실적인 지위상승(문종때 갱정전시과, 예종때 무학재 설치 등)은 무신정권의 기반이 됨. 정중부,이의방,이고등이 쿠데타를 일으켜 의종을 폐하고 명종을 옹립(1170)
Ⅱ. 무신정권의 성립 무신정권(1170-1270)의 전개 1. 형성기 정중부→경대승→이의민→최충헌 중방이 중심기구 1173 동북면병마사 김보당의 난: 무신정권에 대한 문신세력의 첫 반란 1174 서경유수 조위총의 난: 서북인계의 불만을 이용한 무신의 무신에 대한 반란 1175 귀법사 승도의 난: 왕실,귀족의 비호를 받던 교종계의 반란 2. 확립기 1196-1258의 최씨정권(최충헌,최우,최항,최의) 교정도감 중심. 신,희,강,고종을 마음대로 세움. 민란진압 무신과 중방을 억압하고 문신을 보호하는 역현상, 문인등용 사원세력을 억압하는 동시에 교종을 대신하여 선종사원과의 연결을 도모하였다. 3. 붕괴기 임연,임유무 부자. 몽고세력의 옹호를 받은 국왕의 개경환도와 함께 무신정권끝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형성기의 중방, 확립기의 교정도감(교정별감이 장관) 정방: 최우 이후 독자적 인사행정기구 서방: 최우가 설치한 문인들의 숙위기관으로 고문역할 도방(경대승 이후)과 삼별초: 최씨정권의 무력기반. 최우가 도적이 많아 둔 야별초를 좌우별초로 나누었는데, 후에 몽고군에 포로가 되었다 도망해 온 자들로 신의군을 편성하여 삼별초가 이루어짐. 도방은 순수 사병집단, 삼별초는 공병의 성격을 가진 사병
농민,천민의 난 명종,신종대의 30여년간(1172-1203) 서북계 서적의 난(1172,군사적 조건위에서 봉기), 공주명학소에서 망이,망소이, 전주에서 군인,관노의 난 경상도 일대의 남적으로 김사미, 효심, 경주의 신라부흥운동 1198 개경 최충헌의 사노비 만적의 난
몽고에 대한 항쟁 1219년 강동성의 거란족을 함께 공략하면서 몽고와 첫 접촉 후, 살리타의 1차침입때 다루가치(지방내정간섭기관, 충렬왕때 폐지)를 설치, 최우의 강화천도후 2차침입때 살리타가 처인성에서 김윤후에게 피살되어 철군. 임유무의 피살과 개성환도로 오랜 항몽도 끝(1270). 삼별초의 항쟁: 배중손의 지휘로 진도(용장성)로 내려가 남부지방 일대를 잠시 지배, 김통정의 지휘로 제주도로 옮겨 항쟁하다 진압됨(1273). 진압되기 전 일본에 협력을 요구하는 외교문서를 보내기도 함.
고려후기사회의 변동
Ⅰ. 권문세족의 집권 원의 간섭 몽고 간섭기 최초의 시련은 일본정벌 동원 두차례 일본정벌을 위해 설치한 정동행(중서)성의 승상은 고려왕이 겸하고, 관원도 고려왕이 임명한 고려인으로 채워져 정동행성은 명의상, 형식상 존재였고 그의 부속기구인 이문소가 원의 세력을 업고 불법적으로 사법권을 행사 철령이북의 쌍성총관부(동쪽), 자비령이북의 동녕부(서쪽), 탐라총관부 설치. 이중 동녕부와 탐라총관부는 충렬왕때 반환, 쌍성총관부는 공민왕때 무력으로 탈환. 관제와 칭호의 격하 공물, 童女(결혼도감)를 요구 원 황실의 공주를 왕비로 받아들이게 해 원의 부마국이 됨 원은 고려왕족의 혈족혼을 비난하고 노비제도의 개혁을 요구했으나 거절됨. 고려양, 몽고풍, 고려의 左>右제도가 몽고에 따라 左<右제도로 바뀜 음방: 해동청(매)을 가져가기 위해 사육을 하던 기관 남만주일대 고려인을 지배하는 ‘심양왕’을 두어 고려왕을 견제하고 내부분열시도 고려세자가 원의 서울에 ‘독로화’라는 인질로 갔다온 후에 왕이 되게 함 충선,충렬왕, 충숙,충혜왕 간에 왕위의 重祚현상은 원의 간섭에 의한 것. cf. 만권당: 충선왕이 원의 연경에 설치한 여원문물교류기관 cf. 고려의 국내정치는 어느정도 자주성이 보장되었고, 주권도 존속됨
권문세족의 집권 권문세족의 유형: 전통적 문벌귀족(인주이,경주김등), 무신란후 진출한 무신가문(언양김,평강채등), 대원관계를 통해 대두한 세력(평양조,철원윤,안동김등) 친원파, 광대한 농장 소유, 가문위주에서 벗어나 관료적 성향을 띄게 됨.
농장의 발달 녹과전의 제정: 1271(원종), 전시과를 대신하여 경기8현의 땅을 지급, 과전법의 전신, 그러나 농장이 계속 확대됨 토지제도정비의 노력들: 전민변정도감(충렬,공민), 재정개혁(충선), 찰리변위도감(충숙), 정치도감(충목), 공양왕때 이성계의 과전법으로 결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