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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11/26
 

한국사 총정리 7 고대의 주요제도

고대의 주요제도

총관: 고대 국가의 지역단위인 각 州(주)에 파견되어 그곳을 지배하고 맡아 다스리던 통일신라의 주요벼슬,  당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도둑으로 바뀜
태수와 현령: 통일 신라 시대 주군현이란 지방제도를 시행하면서, 군에는 태수를 현에는 현령을 파견하였다.

 의사정: 통일신라 시대 지방관의 비행을 감찰하던 관직.
9서당10정; 誓幢(서당)이란 기를 들어 맹세를 한 군대라는 뜻, 9서당은 왕의 직속부대로 통일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를 지키던 아홉개의 군을 뜻한다. 그리고 10정은 지방 군현을 지키던 군대이다.

선조성: 발해 최고의 통치기관인 3성의 하나로, 왕의 명령이나 지시를 선포하거나 그에 대한 의견을 제기하였던 기관
주자감: 발해 시대 최고의 교육기관
중정대; 발해의 감찰기관으로 형법이나 다른법을 관장하는 법무부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였다.

진대법: 흉년이나 봄철 기근 때 농민에게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철 추수할 때 싼 이자로  돌려 받는것, 고구려에서는 을파소에 의해 실시되었으며 고려에서는 의창, 조선에서는 환곡이라는 이름으로 실시되었다.

골품제도: 출신성분에 따라 骨(골)과 品(품)으로 나누는 제도
골에 해당하는 성분은 성골과 진골로 왕족이며, 6 두품은 귀족출신이 차지하계된다.
 골품은 개인의 신분뿐 아니라 그 친족의 등급까지 표시하는 것으로 되어, 골품에 따라 거주하는 가옥은 물론 옷의 색과 수레까지 제한되어, 신라인들의 사회 정치활동 전반에 그영향력을 미치었다.

화랑도: 화랑도는 신라시대 청소년들의 수련단체로, 꽃러럼 아름다운 남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들 중에는 김유신을 비롯하여 관창, 죽지랑등 3국통일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도 여러명 있다.

 세속오계: 신라의 원광법사가, 당나라 유학시절 추항과 귀산이라는 사람에게서 전해 들은 다섯가지 계율이다.

 첫째, 임금을 충성으로 섬기는 것(사군이충(事君以忠)
 둘째, 부모를 효성으로 섬기는 것(사친이효(事親以孝)
셋째, 벗을 신의로써 사귀는 것(교우이신(交友以信)·
넷째, 전쟁터에 나가서 물러서지 않는 것(임전무퇴(臨戰無退)
다섯째, 생물믈 함부로 죽이지 않는 것(살생유택(殺生有擇)등이다.

왕토사상: 임금은 하늘로부터 이 세상을 통치할 권한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하늘아래 모든 사람과 땅은 왕의것이라는 사상. 원칙적으로 사유재산은 인정되지 않았지만, 실제 귀족들이나 지방세력가들의 토지에는 왕권이 미치지 않았다.

녹읍: 신라에서 귀족, 관리들의 경제적 생활을 마련하기 위해 만든제도
국가는귀족이나 관리에게 고을 단위의 지역을 주고 그 지역에서 일정한 세금을 거둘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그 결과 귀족들은 왕권이 미치지 않은 토지와노비가 증가하게 되었고, ㅕㅇ제 생활이 귀족중심으로 되어갔다.

 관료전: 관료전은 신라 중대 전제 왕권이 성립되면서 왕권을 강화하고 귀족 세력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키기 위해 신문왕이 실시한 토지제도. 녹읍은 그마을 다스리는 관리가 토지세와 노동력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폐단이 있어, 토지세만 거둘 수 있는 수조권을 부여한 것.

정전: 국가에서 조세 수입이 확대를 목적으로 평민 중 장정에게 나누어 준 토지로, 통일 신라 성덕왕 (722)때에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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