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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11/26
 

■왕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불렀을까?

왕이 자기 자신을 일컬을 때 사용하는 말로 짐(朕:나 짐), 고(孤:홀로 고), 과인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 짐은 중국에서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용어였고, 고는 왕후 장상이 사용할 수 있는 용어였다. 그리고 과인이라는 말은 왕이 자기 자신을 낮출 때 사용하는 용어였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황제는 아니지만 중국과 대등하다는 입장에서 고(孤) 대신에 짐(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사실 고려시대에 몽고 침입 후 몽고(원)는 고려의 왕실 용어와 관제를 낮추어 충성을 표시하도록 하면서, 왕을 지칭하는 말인 짐(朕)은 고(孤)로, 폐하는 전하로 태자는 세자로 각각 격하되었다.
왕의 묘호 역시 종래의 조(祖)나 종(宗)대신 왕(王)이라 하고 원에 대한 충성의 표시로 충(忠)자를 붙이도록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형식적으로는 중국(명)과 주종(主從)관계는 유지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대등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조선에서 주로 사용한 용어에 짐, 조, 종 등은 중국과 대등함을 보인 용어 사용이고, 전하, 세자, 왕비(비), 왕후 등은 주종관계를 인정한 용어사용으로 보인다.

위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자칭)-스스로 부를 때
황제 - 짐
왕 - 고
과인 - 자기 자신을 낮추어 부를 때
(타칭)-남이 부를 때
황제 - 폐하
왕 - 전하
(기타)
태자 -황태자를 의미(황위를 이을 황제의 적장자)
세자 -왕세자를 의미(왕위를 이을 왕의 적장자)

황후 - 황제의 본처(황비)
왕후 - 왕의 본처(왕비)

■왕을 부르는 호칭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1. 태어나면
왕은 태어날 때는 이름을 갖지 않고, 왕의 적장자로 태어나면 원자(왕의 장자로서 아직 왕세자로 책봉되지 않은 사람)가 된다.

2. 자 字
관례를 행하면서 받는 호칭. 일생동안 명심해야 할 훈계 또는 축복의 내용을 담은 두 글자

3. 휘 諱(이름)
왕의 이름은 함부로 부를 수 없어서 잘못하여 글로 쓰거나 하면 큰 벌을 받았다. 금기의 글자였던만큼 조선시대 사람들은 역대 조선왕의 이름을 죽 외우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상소문, 과거시험, 문장 등을 쓸 때 그 글자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잘 쓰지 않는 특이한 글자나 새로 글자를 만들어 썼다.

4. 호 號
자신이 스스로를 표시하기 위해 붙이거나 스승 또는 친구들이 붙여주는 일종의 별명.

5. 존호 尊號
왕이 훌륭한 업적을 이룩한 경우, 신료들이 왕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올리는 호칭.

6. 시호 諡號
○ 왕이 죽었을 때 그의 일생을 평가하고, 공덕을 기리기 위해 짓는 호칭.
- 고관 또는 공훈이 있는 사람에게 사후에 주는 존칭.
조선의 왕은 중국에서 두 글자의 시호를 받고, 미진한 경우 신료들이 네 글자의 시호를 더 올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왕후 앞에 붙는 명칭도 '시호'이다.

▷ 시호의 기원은 중국에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신라 법흥왕 원년(514년)에 죽은 부왕에게 '지증'이라는 시호를 올렸다는 기록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시호제도가 정비된 것은 조선시대부터이다.
시호를 정하는 절차와 방법은 매우 엄숙하고 까다롭게 진행되었다. 특히 국왕이나 왕비가 죽은 경우에는 시호도감을 설치하고 시책을 올리도록 했다.
시호에 쓰는 글자는 정해져 있었다. 조선 초기 사용하던 글자는 모두 194자였으나 글자수의 부족으로 시호를 정하기 어려워 세종의 명에 의해 집현전에서 107자를 첨가, 그후 모두 301자를 사용했다. 그러나 자주 쓴 글자는 문 文, 정 貞, 공 恭, 정 靖, 양 良, 효 孝, 충 忠 등 120자 정도에 불과했다. 이 글자들은 모두 몇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예> 문 文
온 천하를 경륜하여 다스린다 / 배우기를 부지런히 하고 묻기를 좋아한다 / 도덕을 널리 들어 아는 바가 많다 / 충심으로 남을 사랑한다 / 널리 듣고 많이 본다 / 등 15가지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의미 가운데 돌아가신 분의 행적에 맞는 글자를 선택, 시호를 올리는 것이다.

7. 묘호 廟:사당 묘 號:부르짖을 호
○ 왕의 삼년상이 끝나고 신주가 종묘에 들어가면 종묘에서 그 신주를 부르는 호칭.

신료들이 왕의 일생을 평가하여 공이 많다고 여기면 '조'를 붙이고, 덕이 많다고 여기면 '종'을 붙여서 두 글자로 지었다.(이것은「예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조'와 '종'에는 어떤 정해진 규칙이 없고, 신료들의 평가에 달려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들로 내려가면 '종'이고, 아니면 '조'다 라든가, 적자이면 '종', 아니면 '조' 등등의 말은 옳은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다.

<증명 I > 선조(중종의 서손, 덕흥대원군의 아들)
처음의 묘호 = 선종 -> 공보다 덕이 앞선다고 평가함.
바뀐 묘호 = 선조 ->임진왜란 때 왜구를 물리친 공이 있다는 근거로 허균과 이이첨이 주장.

<증명 II> 중종 (성종과 정현왕후 윤씨사이의 아들)
묘호가 바뀌진 않았으나, 연산군을 몰아낸 큰 공을 인정하여 '중조'로 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음.
∴ 정해진 원칙은 없으며, 공이 있으면 '조', 덕이 있으면 '종'이라는 신료들의 평가에 달려있을 뿐이다.

8. 능호 陵號
○ 왕의 무덤을 지칭하는 호칭.
왕의 무덤을 '능'이라하여 존중했다. 능은 구릉이란 의미인데, 왕의 무덤이 구릉처럼 크고 웅장하다는 의미다.

이렇게 많은 호칭을 어떻게 표기할까? 왕의 칭호는 보통 붙여서 쓰는데, 그 순서는 보통

① 묘호 ② 중국에서 내려준 시호 ③ 존호 ④ 신료들이 올린 시호 순이다.

<예> 세조의 정식 호칭

" 세조 혜장 승천체도열문영무 지덕융공성신명예흠숙인효
① ② ③ ④

우리가 보통 태조, 세종, 성종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길고도 긴 호칭의 맨 앞에 위치한 '묘호' 두 글자만 부르는 것이다.

그외의 호칭으로는 -

▷ 대원군
○ 임금의 대를 이을 적자손이 없어 방계 친족이 대통을 이어받을 때, 그 임금의 친아버지에게 주던 벼슬. 즉 방계에서 왕위를 계승한 때에 그 왕의 생부에게 주는 칭호.
▷ 대군, 군
○ 대군 : 왕비에게서 난 아들 / 왕의 적자
○ 군 : 후궁에게서 난 아들, 그리고 대군에게서 난 아들
▷ 비, 빈
○ 비 : 왕비, 왕후, 국모 등과 같이 사용하며 왕의 본처
○ 빈 : 후궁과 같이 사용하며 왕의 후처
▷ 공주, 옹주
○ 공주 : 왕비에게서 난 딸 / 왕의 적녀(嫡女)
○ 옹주 : 후궁에게서 난 딸 / 왕의 서녀(庶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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