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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두 여인 어우동-폐비윤씨 ‘성종은 왜 그녀들을 죽였나?’
여성 편력이 심했던 성종. 그만큼 그에 관련된 스캔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이 가운데 성종에 의해 죽음을 당한 여인의 한많은 삶이 드라마 속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SBS 대하사극 ‘왕과 나’는 4일 30회를 방송하며 극의 중추적 역할을 해낼 어우동을 첫 등장시키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폐비윤씨(구혜선 분)와 내시 김처선(오만석 분)을 주인공으로 삼는 이 드라마는 그동안 악녀 이미지가 강했던 폐비윤씨를 재해석시키며 화제를 모았다. 여기에 조선 최고 요부 어우동(김사랑 분)까지 극에 배치시켜 앞으로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성종에게 죽음을 당한 폐비윤씨와 어우동은 역사적으로 어떤 인물이었을까.
● 어우동 성종은 왜 그녀를 죽여야만 했나?
어우동은 조선왕조실록에 어을우동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돼 있다.
알려진 것 같이 방탕한 생활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고 결국 성종에게 사형을 당한 여인이다. 어우동은 양반집 규수로 종실 태강수의 아내였으나 소박을 맞고 쫓겨났다. 그 이유에 대해 어우동의 난잡한 남성 관계를 꼽는데에는 이견이 없다.
일부 사서에는 어우동이 마음에 드는 이와의 성관계를 거리낌없이 가졌고 근친 상간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특히 상대방의 팔뚝과 몸에 문신을 새기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어 눈길을 끈다. 어우동이 거쳐간 남자엔 병조판서 어유소, 직제학 노공필, 아전 오종연 등 조선 최고 권력층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어우동의 소문은 한성은 물론 궁에도 퍼졌다. 어우동의 행실이 갈수록 문제가 되자 성종은 조정대신들과 어우동에 관한 처리를 의논했다. 한명의 여성 때문에 왕이 직접 나선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다. 더욱 놀랄만한 점은 어우동의 사형에 대한 성종의 강력한 태도였다. 남성들의 유흥에 매우 관대했던 성종이기에 어우동에 대한 강경한 입장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또 어우동 사형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점도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왜 일까?
일부에선 성종과 어우동의 적절치 못한 관계가 작용했으리라고 의심하고 있다. 야사들에도 성종이 잠행을 통해 기생집 출행이 잦았다고 설명하며 어우동의 이야기도 언급하고 있다.
권력 양반들과 염분을 뿌렸던 어우동이기에 자신과 어우동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날 경우 정치적인 입지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할 뿐더러 도덕적인 면에서도 큰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이에 성종은 어우동과의 스캔들을 덮어버리기 위해 어우동의 사형을 서둘렀다는 분석이다.
● 폐비윤씨 남편에게 버림받고 사약까지 받은 기구한 운명
폐비윤씨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질투심에 활활 타오른 악녀와 정치세력에 의해 제거된 비운의 여인이라는 것으로 극과 극으로 나뉜다.
왕실 어른이던 정희왕후(양미경 분)는 숙의였던 윤씨를 중전으로 삼는데 대해 검소하고 정성이 넘친다고 이유를 들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정희왕후가 “윤씨가 평소 허름한 옷을 입고 검소한 것을 숭상하며 정성과 조심성으로 대하였으니...윤씨가 사양하기를 ‘나는 덕이 없으며 과부 집에서 자라나 보고 들은 것이 없어 주상의 거룩하고 영명한 덕에 누를 끼칠까 몹시 두렵습니다’고 하니 내가 더욱 그를 현숙하게 여겼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성종도 윤씨를 성품이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마음가짐이 깊고 고요하다고 여러차례 추켜세웠다.
조선왕조실록의 여러 기록을 살펴보면 윤씨가 자신의 출생배경에 대해 매우 민감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윤씨는 정희왕후에겐 물론 성종에게도 “나는 (아버지를 일찍 잃고 과부의 집에서 자라) 출신이 미천하다”고 한탄했다. 몇몇 전문가들은 윤씨가 이후 보여주는 질투심이나 아들 연산군에 대한 지나친 애정이 이런 출신 배경에 대한 자괴감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윤씨는 왜 폐비를 당했을까? 진짜로 알려진대로 성종의 얼굴에 흠집을 내놔서 궁에서 쫒겨난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왕조실록에는 윤씨가 성종의 얼굴에 뺨을 때렸다거나 상처를 냈다는 기록이 없다. 일반인들이 생각한 것처럼 윤씨가 해서는 안될 짓을 해 출궁당했다는 이유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왕조실록에서 전하는 윤씨의 폐비 이유는 뭘까. 역사서에서 보여지는 성종의 폐비 이유는 조금은 엉뚱하다. 성종은 윤씨를 폐비한데 대해 “나인의 처소에 들었는데 윤씨가 어찌 알았는지 그곳에 나타났다”고 연이어 주장했다.
지금 세대로 보자면 몰래 바람피다 걸린 남편이 아내에게 현장을 걸렸다고 이혼하는 격이다.
일부 학계에선 한명회나 윤호 같은 막강한 정치 배경을 갖지 못했던 폐비윤씨에 대한 집권층의 교묘한 공격이 폐비까지 이르게 했다고 보고 있다. 이유가 어떻든 윤씨는 조선왕조 최초로 폐비를 당한 여인이며 또 사사된 첫번째 왕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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