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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11/26
 

미륵신앙 (彌勒信仰)

인도에서 성립하여 동남아시아·동아시아 여러 민족에게 수용된 미륵보살에 대한 신앙. 미륵불은 석가모니불이 열반에 드신 뒤 56억 7000만 년이 지나 미륵정토인 도솔천으로부터 내려와 현세에 출현한다는 미래불이다. 따라서 미륵신앙은 예언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구원론적인 구세주의 현현(顯現)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론적인 경향이 짙은 불교가 지니고 있는 구체적인 신앙형태로서, 희망의 신앙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불교사 속에 깊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미륵신앙에는 도솔천에 살기를 원하는 상생신앙(上生信仰)과 미륵의 하생을 기대하는 하생신앙(下生信仰)이 있다. 이 가운데 상생 즉 도솔천 왕생사상은 보다 체계화되고 심화되어 진종(眞宗) 또는 법상종(法相宗)이라는 대종파(大宗派)로 널리 퍼졌다.

삼국시대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미륵신앙은 면면히 이어오면서 많은 영향을 끼쳐오고 있다. 한국의 지명이나 산이름·절이름 등에 미륵·용화·도솔 등이 자주 쓰였던 점, 각 절에 미륵불을 봉안한 미륵전이 많이 있는 점, 상당수의 미륵불상이 전하고 있는 점, 미륵신앙에 얽힌 설화가 민간에 널리 퍼져 있는 점 등이 모두 미륵신앙의 영향이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전반적인 불교학의 발달과 함께 원효·원측·경흥 등에 의해 미륵사상에 대한 학문적 논리체계가 세워졌다. 또한 신라시대의 화랑과 미륵신앙이 밀접하게 연결되었던 것도 미륵신앙의 신라적 수용의 한 특징이었다. 이것은 곧 미륵신앙의 이상적 세계를 신라사회에 구체적으로 역사화시키고자 했던 현실적 의도였다. 유토피아적 세계를 제시하는 미륵신앙은 주로 하층민의 희망의 대상이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미륵신앙을 중시하는 법상종이 선종이나 화엄종의 세력에 밀려나서 신라시대와 같은 열렬함과 독특함을 지닌 미륵신앙은 다시 꽃필 수 없었다. 그러나 특수 사찰을 중심으로 미륵신앙은 왕실과 민중 속으로 깊이 파고 들었다.

조선시대에도 여전히 하층민을 중심으로 미륵신앙이 이어졌지만 그것을 알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다. 다만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1688년 요승 여환(呂還)이 일으킨 역모만이 뚜렷이 부각되고 있을 뿐이다.

근대에 들어서는 불교에서 분파된 신흥종교 중 전통적인 미륵신앙을 그들의 교리 속에 절충하여 가진 경우가 있다. 주로 금산사를 중심으로,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을 교조로 하는 증산교(甑山敎) 계통과 교주 서백일(徐白一)이 세운 용화교(龍華敎)가 대표적인 예이다. 증산의 제자 김형렬(金亨烈)은 한때 금산사에 미륵 불교라는 한 교파를 세우고 금산사의 미륵불을 증산의 영체(靈體)로 신봉하기도 하였다. 용화교는 한때 그 교세를 떨치기도 하였으나, 1966년 교주 서백일이 피살된 뒤 교세가 쇠퇴하였다. 그러나 지금도 금산사 주변에는 용화동을 중심으로 용화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한편 황석영(黃晳暎)이 지은 《장길산(張吉山)》 등에도 미륵사상이 저변에 깔려 있는 점으로 보아, 1980년대 한국사회에 풍미했던 민중사상과도 어떤 맥락의 일치를 볼 수 있다고도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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