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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 파경] 최고 잉꼬부부는 연출이었다 |
| [스포츠투데이 2004-04-22 02:0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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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 보여준 화목함은 거짓이었다.”
개그우먼 김미화는 그동안 연예계에서 남편 김모씨(46)와 금실 좋은 부부로 알려져 왔기에 이번 이혼 위기 소식이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김미화는 지난 83년 KBS 개그맨 공채 2기로 데뷔해 85년 KBS 2TV ‘쇼비디오자키’의 ‘쓰리랑 부부’에서 ‘순악질 여사’ 캐릭터를 맡아 “음매 기죽어”란 유행어를 히트시키며 스타덤에 올랐다. 김미화가 남편 김모씨를 만난 것은 ‘순악질 여사’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86년 23세 때였다. 당시 김모씨는 형이 KBS 한 프로그램 제작진이어서 녹화현장에 자주 놀러왔다가 김미화를 알게 됐다. 이후 두 사람은 급속히 가까워져 86년 결혼에 골인했다. 김미화는 인기를 끌던 시기에 일찍 결혼해 말 많고 탈 많은 연예계에서 안정된 가정을 이룬 사례로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김미화는 워낙 몸이 약해 몇 차례 유산의 아픔을 겪은 끝에 결혼 후 6년이 돼서야 첫딸을 낳았다. 이어 3년 뒤 둘째딸을 낳았다. 현재 그녀의 큰딸(12)은 초등학교 6학년,둘째딸은 4학년에 재학 중이다. 그동안 연예계에서는 김미화의 가정이 화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미화는 여러 신문 잡지와의 인터뷰나 방송 출연에서 기회만 있으면 남편이 자신의 활동을 적극 지원해주는 ‘최고의 후원자’라고 자랑해왔다. 김미화는 지난 2001년 한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남편은 항상 나에게 ‘당신은 큰 그릇이며 큰일 할 사람’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 인터뷰에서 밤늦게 들어와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자신을 위해 과일 도시락을 챙겨주는 남편의 살뜰함을 자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미화는 21일 인터뷰에서 그동안 방송 프로그램 출연이나 언론 인터뷰에서 보여준 다정한 부부의 모습이 “연예인으로서 어쩔 수 없이 꾸민 거짓이었다”고 토로했다.
김미화는 개그우먼으로는 드물게 사회참여 봉사활동 등 연예활동 외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김미화는 지난 2003년 ‘호주제 폐지 운동’에 참여해 홍보대사로 활동해왔다. 그녀는 지난해 6월 ‘호주제 폐지’를 지지하는 모임에서 ‘나의 성은 김씨가 아닌 박씨였다’며 어머니의 성을 써야 했던 가슴 아픈 가족사를 공개해 주목받았다. 미군장갑차 여중생사망사건 규탄모임이나 이라크전 파병반대모임에서도 연예계를 대표해 1인시위를 하거나 참여해왔다.
또한 그녀는 38세의 늦은 나이에 입학한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를 다니며 향학열을 불태웠다. 김미화는 이처럼 남다른 사회참여활동을 인정받아 지난해 10월 MBC 표준FM 라디오 2003년 가을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이란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전격 발탁됐다.
김미화의 주위에서는 그녀가 학업이나 사회참여 봉사활동에 남다른 열성을 가지고 살아온 점을 들어 이번 이혼 위기 소식을 더욱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 |
<<김미화입장>>
김미화, 남편 외도·구타 18년을 참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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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우먼 김미화(40)가 21일 오후 2시50분께 KBS 2TV의 ‘TV는 사랑을 싣고’ 녹화를 마치고 KBS 본관 VIP룸에 나타났다. 인터뷰 내내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남편 김모씨(46)가 친정어머니를 구타했다는 부분에서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다음은 김미화와의 일문일답.
―이혼한다는 것이 사실인가.
▲아직은 이혼한 상태가 아니다. 내가 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중이므로 자세한 것은 얘기할 수 없다. 변호사와 얘기했으면 한다.
―이혼 결심은 언제하게 됐나.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다. 준비는 4월 초부터 했다. 이전에도 구타가 심했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내 인생도 소중하다. 더 이상 이렇게 내버려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구타와 폭언을 18년 동안 참아왔다.
―남편의 폭력행위를 동료 연예인들에게 얘기한 적이 있나.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공인이라는 이유로 더 말하지 못했다. 지인들이 많이 놀랄 것이다.
―신혼 초부터 맞고 살았다면 왜 일찍 이혼하지 않았나.
▲공인이니까 못했다. 사실 이혼녀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난 어린 시절 아버지 없이 자랐다. 내 아이들에게 그런 환경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친정 식구들은 십수년 전부터 헤어지라고 얘기했다.
―이혼 사유가 크게 세 가지라고 들었다.
▲남편의 외도와 상습적인 구타,친정 식구들에 대한 학대 등이다.
―친정어머니까지 때렸다는데.
▲친정 식구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은 그나마 약한 편이다. 하루는 집에 가보니 친정어머니가 남편한테 맞아 턱 밑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참다 못한 어머니가 경찰에 신고하려고 집에서 나오는 중이었다. 유명인인 딸에게 해가 될까 봐 참았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맞은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내 가슴에 못이 박힌다. 남편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5개월 동안 단 한 번도 병원을 찾지 않은 사람이다. 돌아가신 후에 딱 한 번 왔다.
―친정 부모와 같이 사나.
▲아니다. 어머니는 남편이 무서워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간 적도 없다. 친정 부모님은 11년간 우리 집 주변에 사시면서 애들을 다 키워주셨다. 친정아버지(계부)는 내가 중학교 때 우리 집에 오셨다. 사위에게 싫은 소리를 안하시는 분이다.
―본인은 얼마나 맞았나.
▲어떤 날은 방송녹화 전에도 맞았다. 구타 사실을 아이들도 안다. 하지만 그때마다 가정을 지키고 싶어 남편을 용서하곤 했다.
―남편은 이혼을 원하고 있나.
▲남편도 이혼을 원한다. 6∼7년 전부터 부부싸움을 하면 “이혼해 달라”고 말했다.
―얼마 전 셋째를 가졌다가 유산한 것은 남편의 구타 때문인가.
▲아버지의 병 간병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이유도 있다. 하지만 당시 남편의 폭력이 극도로 심했다. 남편의 부정 때문에 부부싸움이 잦았다.
―남편이 세 명의 유부녀와 바람을 피웠다고 기사가 나왔다. 사실인가.
▲그것은 변호사에게 물어봤으면 한다.
―방송에서는 남편과 화목한 모습으로 비쳐지지 않았나.
▲방송에서의 모습은 거짓이었다. 그 점에 있어서는 팬들에게 너무 죄송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행복한 모습만 보인 내 속내도 이해해 달라.
―남편이 왜 구타했나.
▲구타에 이유가 있나. 남편은 자기 콤플렉스가 심한 사람이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다툼이 많았다. “네가 돈 좀 번다고 나를 무시하냐”는 말을 자주했다.
―아이들은 지금 이혼소송 사실을 알고 있나.
▲얼마 전에 얘기했다. 아이들(초등학교 6학년·4학년)에게 “엄마가 얼마 뒤 이혼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고작 초등학생인 애들이 “엄마,요새는 그런 게 흠이 되는 시대가 아니에요. 엄마 마음대로 해요”라고 말했다. 가슴이 미어졌다. 애들도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없다. 내(엄마)가 물어봐서 하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애들은 “엄마와 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해줄 생각이다.
―지금 사설 경호원이 4명 따라다닌다. 고용한 건가.
▲그렇다. 남편이 어제(20일) 전화로 “방송국에 와서 행패를 부리고 망신을 주겠다”고 협박했다. 지금 두 딸과 모처에서 피해 지낸다.
―시댁에서는 알고 있나.
▲상황이 안 좋은 것은 알고 계실 거다. 시아버지는 서울에 계시지만 형님과 누나분은 모두 일본에 있다. 다른 무엇보다 남편 본인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만약 남편이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빈다면 어떻게 할건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왔다. 오죽 하면 이런 결정을 했겠냐.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남편과 재결합할 확률은 단 1%도 없다.
―팬들에게 한마디해 달라.
▲너무 죄송하다. 열심히 살았는데… 이렇게 됐다. 죄송하다. |
<<남편입장>>
| 김미화 남편 "뺨 때린건 인정…간통 한적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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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간에 이혼에 동의했나.
▲그런 사실이 없다. 지난주 토요일(17일) 애들을 데리고 나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김미화는 부친의 임종을 지키고 장례식을 치르며 결정적으로 이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장례식 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
▲이혼을 결심할 만한 일은 없었다. 미리 계획하고 준비한 것 같다. 오늘 은행으로부터 내 명의의 통장이 가처분당했다는 연락을 받았고, 이혼소송도 신문기사를 보고 알았다.
―김미화는 상습적인 폭행과 외도가 이혼의 근본적인 문제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뺨을 몇대 때린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먼저 손이 나가지 않았다. 나를 할퀴고 덤볐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이었고, 언제부터 분위기가 냉랭해졌나.
▲(장인) 장례식 이후 관계가 안 좋았다. 하지만 이혼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동안 외도를 의심했지만 기껏해야 여러명이 함께 골프 치고 차 마신 게 전부였다. 또 그 여자들과 일일이 통화를 하고 모든 것을 분명하게 공개했기 때문에 외도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간통으로 몰기 어렵자 폭행을 걸고 넘어진 것 같다.
(김미화는 이혼소송을 청구하면서 폭행에 따른 각각 2주의 진단서를 첨부했고, 친정어머니의 진술서도 첨부했다.)―장인이 입원해 있는 동안 단 한차례도 병문안을 오지 않았던 것에 큰 상처를 받은 것 같다.
▲병문안을 갔다. 두차례 병원비 계산도 내가 했다. 병원비만 내고 병실에 안 갔겠는가. 같은 병실에 입원했던 보호자들이 다 알고 있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폭행하고 심지어 장모를 폭행했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아이들 앞에서 다툰 적은 있지만 폭행한 사실은 없다. 또 장모를 폭행한 사실은 더더욱 없다. 큰애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인가, 그때는 장모님이 애들을 봐줬는데, 술을 많이 드셨기에 아이를 보면서 술을 드시면 어떡하느냐는 말을 하면서 어쩌다 장모님을 밀친 것이었다. 폭행은 사실이 아니다.
―김미화는 양육권만 포기하면 많은 부분을 양보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엄마와 살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면접권은 줘야 하는 것 아니냐. 또 은행통장을 가처분한 사람이다. 계획한 일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너무 일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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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인터넷에 올라온 이 기사를 보고..정말 충격이었다. 아직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이지만, 주변사람에게 말도 못하고, 방송에서 거짓웃음으로 행복한척, 화목한척,,, 그 말 못할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뒤돌아 서서 그녀가 느꼈을 슬픔이란... 그리고 공인이란 짐때문에...사실을 밝히기에 또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그렇지만..폭력을 휘두르고, 게다가 장모님에게 까지... 인간 말종이라고 밖에 생각이 안든다... 그리고 백번 잘한 결심이란 생각이 든다...
이경실사건도 그렇고... 결혼이란거...자라온 환경...집안내력...사고방식... 상이한 두사람이 만나서 하나가 되는거...그게 어디 쉬울수 있을까... 한부모 밑에서 낳고 자란 형제들도 성향이 제각각인데... 그렇지만...선을 추구하고, 악을 배척하고,,, 행복을 원하고,,,불행을 원치않는 기본적인 마인드는 같은텐데...
그 수많은 세월...겪었던 수많은 고통... 이혼이라는 두글자로 보상받기엔...너무 슬픈 현실이다...
이제라도 용기있는 고백...너무 잘하신것 같습니다. 화이팅~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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