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구려사 복원. 대한 교과서(주). 2006. 3475-3843 (개정판. 광개토대왕 훈적비와 고구려)
동양사에 있어서 역사왜곡에는 한자의 모양과 발음을 고치는 것도 주요한 몫을 담당한다. 여기서 그 구체적인 예를 하나 보자. 백제에서는 왕을 "어라하"라 부르고 백성은 '건길지'라 부른다. 모두 중국말의 왕에 해당힌다. 그 왕비를 '어륙'이라 부른다. 중국말로 (왕)비라는 뜻이다. [양서]백제전.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왕비를 일컸는다는 '어륙'의 '륙'자다.
징기스칸 때에 '요'나라를 부흥하겠다고 일단이 반란을 일어켰다. 세궁역진하여 이 반도들이 고려의 강동성에 거점을 확보했다. 절기가 마침 좋지 못하여 몽골군이 궁핌하게 되었다. 몽골 장수 하친, 차라가 고려에 원조를 청해 왔다. 고려에서는 조충, 김취려 두 장군이 군량와 함께 응원군을 파견했다. 그리하여 드디어 '요'의 부흥운동을 하던 일당을 '강동성'에서 종지부를 찍게 했다.
이 내용은 고려말 충혜왕이 몽골에 잡혀 갔을 때 고려 대신들이 왕을 구해 올 방안을 검토하다가 이제현이 [상정동행성]에 글월을 올리기로 했다. 이제현이 글을 썼지만 충혜왕이 유배지로 가는 도중에 죽고 말아서 글을 올리는 것을 멈췄다. 그러나 그 글은 중국문인들이 [려한십가문]이란 책에 옮겨 적었을 정도로 높이 평가 받았다.
그 글 내용중에는 앞의 '강동성'이 아니라 고려의 '육량'지로 반란군이 들어 와 분탕을 친 것으로 되어 있다. 문제는, 지금은 모두 '육량'으로 읽는 이 지명의 '육'자가 발음을 왜곡시켜 놓은 것이다. 그리고 '강동성'이 아니라 '육량'지로 응원군을 보낸 고려는 그 판도가 우리가 교과서에거 배우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곳이라는 점이다.
육지등의 '육'에 '육' 발음이 나오는 것은 '육(륙)'의 우부방 상단에 있는 '부여' '부'자를 닮은 자가 성부가 돼기 때문이다. 풀 초 하나 아래 여섯 육자를 쓴 자이다. 그리고 그 음은 두자로 읽으면 '가수'이고 단일은으로 읽어면 '구'가 그 음이다. 또 '량'자는 노량을 '노돌' 명량해전의 명량을 '울돌'이라고 읽는 데서 볼수있다. 따라서 '육량'은' '구다라'로 읽는다 '구다라는 일본이 백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 '육량'을 찾으면 지금의 '광동성,' '광서성'을 지칭한다. 진시황 33년에 개창한 곳이다. '광동, 광서'가 '구다라' 즉 "백제"였던 곳이지만 징기스칸 때에는 고려의 영토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왕비를 '어륙'이라 했음을 보았다. 어조사 '어'는 삼족오의 '오'가 만들어 지기 전에 오를 대신해서 사용된 한자다. 그리고 '육(륙)'의 음은 '구'인 것을 알았다. 두자를 합하면 "오쿠"가 된다. 왕비의 호칭이다. 지금도 귀부인을 호칭할 때 일본어에서는 '오쿠'상 이라 부른다. 백제어에서 따온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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