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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각저생각
그여자그남자
스페인여행
banyan (atelier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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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11/09
 







그 여자는 규정했다.

사랑을 하는 데 3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상대에 대한 자그마한 호감도가 생겨도

그 감정을 극대화 해서 사랑감정에 최대한 열중하는 사람

 

평소에는 냉정하고 이성적이지만

상대에 따라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던 사랑감정이 폭발하는 사람

 

상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의 깊이와 무관하게

늘 언제나 냉정하고 이성적이어서 연애나 사랑이란 감성자체에 무심한 사람

 

그 남자가 세가지 유형 중 세 번째에 속한다는 사실을

그 여자는 새삼스럽게 다시 깨달으며

수년전 시작했다 흐지부지 끝냈던 사이를

세월이 조금 흘렀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새삼스럽게 다시 시작했던 이유가 너무 사소해서

그 남자와의 감정을 편하게 정리하며

혼자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 여자는 안다.

인간의 속성 중

세월로 변하는 것이 있고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세 번째 유형의 남자는

가슴속에 언제나 폭발할 준비를 하고 있는 에너지를 저장하고 있는 그녀와는

영원한 평행선을 그을 수 밖에 없는 남자라는 사실을

그 여자의 인생에서 그런 유형의 남자는

어떤 면으로도 그녀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관계를 시작하기 위해서도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도

관계를 끊어내기 위해서도

언제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에

그 남자와의 지리멸렬한 관계를 끊어내기 위해서

그 여자는 또다시 온몸에 퍼져있는 에너지를 한곳으로 모은다

 

그러면서 그 여자는 생각한다.

새로운 사람과의 새로운 관계성을 또 다시 만들어 내기 위한 에너지가

이제는 정말 모두 고갈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고

 







한국사람보다는 중국이나 일본인의 외모를 가진 그 남자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건너가서 한국어보다 영어가 모국어처럼 더 편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학교를 마치고 대학교수가 되었다.

비발디와 파도타기를 좋아한 그 남자는 전갈자리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매력과 까다롭지 않은 성격 그리고 B형 남자답지 않은 자상함으로 주위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매너남으로 통하면서 인기가 많아서 자신에게 딱 맞는 여자를 아내로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아주 많았다
.

하지만 그남자가 입버릇처럼 말하듯이 정말 “All men are stupid”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자기에게 맞는 여자를 찾아내는 안목이 없어서 그랬는지, 그남자는 첫번째 부인인 홍콩여자와도, 두번째 부인인 한국여자와도 오래 살지 못하고 헤어졌다

 

두번의 결혼에서 자식이 없었기에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 등 세계의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을 입양해서 키우겠노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남자는 자신보다 25살 어린 일본인 제자와 세번째 결혼을 하여 아내를 닮은 아주 예쁜 여자아이를 낳고는 다른 아이들을 입양해서 키우겠다는 말을 다시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쁜 제자의 적극적인 구애에 넋이 나가 순식간에 결혼까지 해치운 그남자는 두 사람 사이의 너무 많은 나이차이 때문인지, 아니면 진정한 사랑과 순간적인 끌림을 구별하지 못한 너무 성급한 결정에의한 결혼이어서 그랬는지, 아이를 낳고부터는 세번째 부인과는 한집안에서 서로의 존재감을 상실한채 마치 타인처럼 생활하고 있다.

 

두 사람을 부부란 이름으로 남아있게 하는 유일한 고리는 자식이라는 그남자는 둘 중 누구에게든 좋은 사람이 생기면 언제든지 상대를 놓아주기로 암묵적으로 약정한 상태에서 결혼이라는 틀 속에서 부부란 이름으로 그렇게 하루하루를 무심의 허울을 쓰고 살아내고 있다.

 

이 세상에 부부란 이름 속에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들은 참 다양하고도 묘하다.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란 틀은 어느 순간 그걸 만들어 낸 인간의 통제권을 벗어나 스스로 가공할 만한 파워를 창출하여 그 제도의 틀에서 이탈하기 위해서는 인간에게 용기 이상의 결단과 희생과 자기번민을 강요하곤 한다. 


 







영남모란동백


산울림의 '회상'

Cliff Richard의 'Visions'

'Anything That's Part of You'

'It's now or never'

나훈아의 '사랑''영영'

'건배'

'떠나가는 배'

그리고.....

 

 

위의 노래들이 라디오에서 나오면 그여자는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라디오 앞에 앉아서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그 노래들은 그여자가 화장을 할 때 들려오기도 했고, 옷을 입다가, 세수를 하다가, 책을 읽다가, 글을 쓰다가, 아침을 먹다가 들려오기도 했다.

첫 소절을 들으면서 그렁그렁 눈가에 매달리기 시작하는 눈물은 노래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를 즈음해서는 그여자의 배속 깊은 곳을 후벼 파며 꺼이꺼이 소리를 만들어 냈다.

갑갑해지는 가슴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한바탕 커다란 소리로 눈물을 쏟아내고 난 그여자는 노래가 끝나면 라디오 옆에 있는 크리넥스 통에서 휴지를 몇 장 꺼내서 얼굴 위에 남아있는 눈물을 훔쳐내고는 중단 했던 일을 다시 계속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여자는 그남자와 함께했던 수많은 노래에 눈물을 한 웅큼씩 쏟아내면서 그남자에 대한 그리움을 온몸으로 체득해갔다.

하지만 그여자는 알지 못했다. 
얼마나 더 많은 미세한 세포들이 눈물로 얼룩지고 물들어야 그 체득의 시간들에 종지부를 찍게될지





수년 만에 만난 여고 동창생 다섯 명의 모임이었다..

 

절친한 친구들이라기 보다는 서로 이런 저런 이유로 얽혀서 친구란 이름을 가지게 된 중년 여인들의 오랜만의 회동이었다. 그 다섯 중 결혼 후 미국에서 거주하던 한 친구가 수년 만에 서울을 방문하는 바람에 서울에 살면서도 1년에 어쩌다 한 두번 연락하는 나머지 네 명의 친구들이 모처럼 다 함께 모인 자리였다.

 

그여자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오랜 세월 공통으로 쌓아간 역사가 없이도 끝도 없이 대화를 이어 갈 수 있는 중년 여인들의 수다의 저력에 감탄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저녁까지도 이어질듯한 대화는 다음 약속이 있다는 미국에서 온 친구의 말 한마디로 급하게 마무리 되고, 모두들 아쉬운 듯 작별 인사를 하고 그 모임은 비로소 해산 될 수 있었다.  

 

돌아서는 차 안에서 그여자는 친구들의 면면을 돌이켜보았다. 다섯 명 중 두 명은 이혼녀, 한 명은 두 번 이혼하고 세번째 남편과 살고 있는 재혼녀, 한 명은 사별녀, 그리고 나머지 한 명만이 처음 결혼한 남편과 가정을 이루고 있는 유부녀였다. 하지만 그녀 조차도 자녀 둘을 모두 유학 보내놓고 남편과 둘이서만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기에 통상적으로 말하는 가족구성원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특별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이들이 전혀 아니었다. 고교 시절 나름 모두 공부 잘하는 모범생으로서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 받고 좋은 대학교 들어간 그녀들이었기에 대학 졸업 후 결혼해서 가장 평범한 삶을 살 것으로 보이던 그녀들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세번의 강산이 바뀌는 세월과 함께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그녀들의 다양한 삶의 변천사를 머리 속에 그리며, 어머니 세대와 지금 그녀들의 사는 모습이 얼마나 다르며 앞으로 그녀들의 자식들이 사는 모습은 또 지금과는 얼마나 많이 달라있을지에 대해 그여자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가족이란 단어가 어떻게 규정되어야 변해가는 시대상을 반영할 수 있을지 또한 궁금해졌다.





그건 그여자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종지부였다.


엿가락보다 더 치덕치덕한 낫또처럼

끊어질 듯 끊어질 듯하며 전혀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던

그 사랑이란 중독이,

 

십년 남짓한 세월을

그여자를 칭칭 감고서

그여자의 모든 몸짓과 생각을 지배하던

그렇게 모질고도 질겼던

그 사랑이란 괴물이,


그여자의 온 몸을 헤집고 다니며

시도 때도 없이 그여자를 욱신욱신하게 만들던

그 사랑이란 암 덩어리가


친구의 지나가는 듯 툭 던진 전화 속 한마디에

그 오랜 세월 그여자가 토해냈던

한많은 눈물과 하소연과 넋두리와 몸부림을 비웃듯

일순간에 바람처럼 온 몸에서 빠져나간 것이다.

 

그건 마치

마우스 클릭 한번으로

오랜 세월 심혈을 기울여 써 내려간 작품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그런 느낌이었다.

 

친구와의 전화를 서둘러 마무리한 그여자는

한 동안 전화기를 손에 든 채

그냥 그 자리에 그렇게 앉아 있었다.

공허함이라고도

아쉬움이라고도

허전함이라고도

그 무엇이라고도 표현하기 어려운

그 멍한 감정을 가슴에 담은 그대로...

 

그러다 정신을 가다듬은 그여자는
다시 전화기를 들고

익숙한 그남자의 번호를 찾아

그남자에게 마지막 이별 문자를 담담하게 보내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출근준비를 서둘러 하고는

직장으로 향했다.

 

그 후로

뜻하지 않은 순간에

어쩌다 한번씩

그남자에 대한 생각들이

그여자의 머리 속을 스치곤 했지만

그 생각들은 예전처럼

그여자의 뼈 속을 파고 들지도

그여자의 심장 속을 헤쳐 놓지도

그여자의 울음보를 건드리지도 못할 정도로

매우 미약한 여진에 불과했다.

 

그러면서 그여자는

그여자의 평생의 화두였던 사랑

이제 그여자 삶에서

더 이상 최우선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랬었다.
그 책을 읽기 전까진.

그 책에서 아래의 글들을 읽기 전까진
정말 그랬었다.

 

그 페이지를 읽어 내려가던

그여자는

사랑이란 녀석이

다시 한번 스멀스멀 그여자의 몸에 휘감길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어차피 또 다시 사랑이란 녀석과 마주해야 한다면

이번엔

안타깝지 않은 사랑

목마르지 않은 사랑

그리우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그런 사랑이어야만 한다고
그여자는 생각했다.


그여자는

그렇게

또 다시

절대로 신사적이지 않은 사랑과

무모한 신사협정을 맺고 말았다.





사랑해라. 시간이 없다.

사랑을 자꾸 벽에다가 걸어두지만 말고 만지고, 입고 그리고 얼굴에 문대라.

사랑은 기다려주지 않으며,

내릴 곳을 몰라 종점까지 가게 된다 할지라도 아무 보상이 없으며

오히려 핑계를 준비하는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사랑해라. 정각에 도착한 그 사랑에 늦으면 안 된다.

 

사랑은 그런 의미에서 기차다.

함께 타지 않으면 같은 풍경을 나란히 볼 수 없는 것.

나란히 표를 끊지 않으면 따로 앉을 수밖에 없는 것.

서로 마음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같은 역에 내릴 수도 없는 것.

그 후로 영원히 영영 어긋나고 마는 것.

 

만약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우주를 바라보는 방법을 익히게 될 것이다.

그러다 어쩌면, 세상을 껴안다가 문득 그를 껴안고,

당신 자신을 껴안는 착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 기분에 울컥해지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아무 준비가 돼 있지 않은 당신에게 많은 걸 쏟아놓을 것이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 세상을 원하는 색으로 물들이는 기적을

당신은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동전을 듬뿍 넣었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해도 당신 사랑이다.

너무 아끼는 책을 보며 넘기다가,

그만 책장이 찢어져 난감한 상황이 찾아와도 그건 당신의 사랑이다.

누군가 발로 찬 축구공에 맑은 하늘이 쨍 하고 깨져버린다 해도,

새로 산 옷에서 상표를 때어내다가 옷 한 귀퉁이가 찢어져버린다 해도

그럴 리 없겠지만 사랑으로 인해 다 휩쓸려 잃는다 해도 당신 사랑이다.

내 것이라는데,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데

다 걸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무엇 때문에 난 사랑하지 못하는가, 하고 생각하지 마라.

그건 당신이 사랑을 누구나, 언제나 하는 흔한 것가운데 하나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왜 나는, 잘하는 것 하나 없으면서 사랑조차도 못하는가,

하고 자신을 못마땅해하지 마라.

그건 당신이 사랑을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흔한 것도 의무도 아닌 바로 당신, 자신이다.

 

사랑해라,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잃어온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사랑하고 있을 때만 당신은 비로소 당신이며,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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