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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여자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종지부였다. 엿가락보다 더 치덕치덕한 낫또처럼
끊어질 듯 끊어질 듯하며 전혀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던 그 사랑이란 중독이, 십년 남짓한 세월을 그여자를 칭칭 감고서 그여자의 모든 몸짓과 생각을 지배하던 그렇게 모질고도 질겼던 그 사랑이란 괴물이, 그여자의 온 몸을 헤집고 다니며
시도 때도 없이 그여자를 욱신욱신하게 만들던 그 사랑이란 암 덩어리가 친구의 지나가는 듯 툭 던진 전화 속 한마디에
그 오랜 세월 그여자가 토해냈던 한많은 눈물과 하소연과 넋두리와 몸부림을 비웃듯 일순간에 바람처럼 온 몸에서 빠져나간 것이다. 그건 마치 마우스 클릭 한번으로 오랜 세월 심혈을 기울여 써 내려간 작품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그런 느낌이었다. 친구와의 전화를 서둘러 마무리한 그여자는 한 동안 전화기를 손에 든 채 그냥 그 자리에 그렇게 앉아 있었다. 공허함이라고도 아쉬움이라고도 허전함이라고도 그 무엇이라고도 표현하기 어려운 그 멍한 감정을 가슴에 담은 그대로... 그러다 정신을 가다듬은 그여자는 다시 전화기를 들고 익숙한 그남자의 번호를 찾아 그남자에게 마지막 이별 문자를 담담하게 보내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출근준비를 서둘러 하고는 직장으로 향했다. 그 후로 뜻하지 않은 순간에 어쩌다 한번씩 그남자에 대한 생각들이 그여자의 머리 속을 스치곤 했지만 그 생각들은 예전처럼 그여자의 뼈 속을 파고 들지도 그여자의 심장 속을 헤쳐 놓지도 그여자의 울음보를 건드리지도 못할 정도로 매우 미약한 여진에 불과했다. 그러면서 그여자는 그여자의 평생의 화두였던 ‘사랑’은 이제 그여자 삶에서 더 이상 최우선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랬었다. 그 책을 읽기 전까진. 그 책에서 아래의 글들을 읽기 전까진 정말 그랬었다. 그 페이지를 읽어 내려가던 그여자는 사랑이란 녀석이 다시 한번 스멀스멀 그여자의 몸에 휘감길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어차피 또 다시 사랑이란 녀석과 마주해야 한다면 이번엔 안타깝지 않은 사랑 목마르지 않은 사랑 그리우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그런 사랑이어야만 한다고 그여자는 생각했다. 그여자는
그렇게 또 다시 절대로 신사적이지 않은 사랑과 무모한 신사협정을 맺고 말았다.

사랑해라. 시간이 없다.
사랑을 자꾸 벽에다가 걸어두지만 말고 만지고, 입고 그리고 얼굴에 문대라. 사랑은 기다려주지 않으며, 내릴 곳을 몰라 종점까지 가게 된다 할지라도 아무 보상이 없으며 오히려 핑계를 준비하는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사랑해라. 정각에 도착한 그 사랑에 늦으면 안 된다. 사랑은 그런 의미에서 기차다. 함께 타지 않으면 같은 풍경을 나란히 볼 수 없는 것. 나란히 표를 끊지 않으면 따로 앉을 수밖에 없는 것. 서로 마음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같은 역에 내릴 수도 없는 것. 그 후로 영원히 영영 어긋나고 마는 것. 만약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우주를 바라보는 방법을 익히게 될 것이다. 그러다 어쩌면, 세상을 껴안다가 문득 그를 껴안고, 당신 자신을 껴안는 착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 기분에 울컥해지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아무 준비가 돼 있지 않은 당신에게 많은 걸 쏟아놓을 것이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 세상을 원하는 색으로 물들이는 기적을 당신은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동전을 듬뿍 넣었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해도 당신 사랑이다. 너무 아끼는 책을 보며 넘기다가, 그만 책장이 찢어져 난감한 상황이 찾아와도 그건 당신의 사랑이다. 누군가 발로 찬 축구공에 맑은 하늘이 쨍 하고 깨져버린다 해도, 새로 산 옷에서 상표를 때어내다가 옷 한 귀퉁이가 찢어져버린다 해도 그럴 리 없겠지만 사랑으로 인해 다 휩쓸려 잃는다 해도 당신 사랑이다. 내 것이라는데,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데 다 걸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무엇 때문에 난 사랑하지 못하는가, 하고 생각하지 마라. 그건 당신이 사랑을 ‘누구나, 언제나 하는 흔한 것’ 가운데 하나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왜 나는, 잘하는 것 하나 없으면서 사랑조차도 못하는가, 하고 자신을 못마땅해하지 마라. 그건 당신이 사랑을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흔한 것도 의무도 아닌 바로 당신, 자신이다. 사랑해라,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잃어온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사랑하고 있을 때만 당신은 비로소 당신이며,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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