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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에 '오말리'와 '이지', 이 두 사람의 생사를 궁금하게 만들어서 나를 끔찍하게도 울게 만들었던 미드 Grey's Anatomy가 다시 돌아왔다.
두 사람 중 한사람은 분명 죽음으로 끝낼 것이라는 예감이 적중해서 결국 작가는 오말리의 생명을 앗아가고 말았다. 가장 조용하고 성실하고 착실하고 늘 묵묵하게 자신의 일에 충실했던 의사 오말리. 그래서 드라마에서 늘 존재가 가장 미비해서 마음이 쓰이게 했던 남자...그랬기에 횡단보도에서 버스에 치일 뻔한 여성을 구하고 결국에는 대신 죽음을 맞이한 그를 보며 나는 지난번 시즌 마지막 편에서 흘렸던 울음을 또 다시 흐드러지게 쏟아내야 했다.
Grey's Anatomy...이 드라마는 내게 드라마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에 난 이 드라마를 그저 드라마라는 이름으로 부르기가 미안하다. 이 안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인생에 대한 고찰, 우리가 알아야할 인생에 대한 혜안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모습과 관계성에서 나는 이 지구안에 살고 있을 그 누군가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되고 그들을 통해 내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과연 나는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그리고 드라마 한편에 이다지도 깊은 인생철학을 담아내는 작가들의 시각과 역량에 늘 기립박수를 보내곤 한다.
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의사들은 머리와 손으로 사람들을 살리고 있지 않다. 가슴과 입으로 사람들을 살린다. 해답이 나오지 않을 상황에서 그들은 가장 최선의 대답을 찾아내서 환자들을 위로하고, 삶의 의지를 심어주고, 주위 동료들과 화합한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나라 의대생들도 의술을 배우기 이전에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상담자의 마음을 배양하고 그에 합당한 화술을 배우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냉정한 이성과 뜨거운 마음을 함께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진정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다시한번 가슴에 담게 된다.
오말리의 죽음을 통해 드라마에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언제나처럼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마지막 마무리 대사를 들으며 우리는 과연 가까운 이의 죽음을 어떻게 감당해내고 인생을 또 다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나름의 해답을 얻게 된다. 부인(Denial) -> 분노(Anger) -> 타협(Bargain) -> 우울(Depression) -> 수용(Acceptance). 작가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이 다섯 단계를 거치며 받아들인다고....
이 드라마가 가까운 이들을 잃은 사람들이 '수용'에 이르는 길을 제시해주었으면 싶다. 죽음 후,이별의 슬픔을 극복하는 건 결국 죽은자의 몫이 아니라 산자의 몫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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