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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지의 시 - 세 번이나 임금님 사랑 받으니 정자 있으나 와서 노닐 새 없네 가슴 속 기심(권세에 대한 욕심) 바로 끊는다면 해환 앞에서도 갈매기와 사귈 수 있으리 - 한명회 연산군 갑자사화에 부관참시(무덤에서 관을 파내어 깨뜨리고 시신을 참수함) 당하였고 두 딸도 20세 이전 요절하였다 - 최완수 선생 해설 중에서

압구정 押鷗亭도 -1741년 전경
정선의 압구정을 다시 그려본다 압구정 뒤편에는 관악산 청계산 우면산이 보이고 맞은편에는 옥수동 금호동 일대가 보이며 그 뒤로 남산과 큰 소나무가 보인다 압구정을 처음 지은 사람은 한명회 - 김종서, 안평대군, 용, 단종, 남이 사육신 등 수 많은 사람을 죽인 모사의 장본인
내 어린 시절 놀던 가락동에는 병자호란의 전승비인 '청태종 공덕비'가 뒹굴고 있었다 그 때도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석촌호수가 군데군데 있었다 나중에 이 곳이 강의 본줄기 였음을 알았는데 그 때만해도 병풍같은 자연과 남한산성은 앙름다운 강변을 느끼기에 충분했건만

정선의 1700년대 '송파진'을 다시 그리다 송파진은 지금의 송파대로 동서 양쪽 중 동쪽 호숫가에 있던 나루터다 1970년 송파나루(지금의 석촌호수) 앞을 흐르던 한강의 본줄기를 매립하고 둑을 세워 잠실 일대 부지를 만들었다 멀리 삼전도 비가 보인다 원래는 산전도 길이 지름길이었으나 치욕의 역사로 인해 송파진이 정로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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