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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기대를 모았던(그보다는 너무 큰 기대로 우리가 부담감을 주어 버렸던;;) 김연아 선수가 막판에 안타까운 실수를 해서 전국민이 함께 탄식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ㅜ.ㅡ
이처럼 세계 최고 기량을 보유한 선수들도 막상 실전에 나가면 예상 외의 변수가 중압감이 되어 실수를 하는 경우를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김연아 선수의 경우는 지금 현재도 계속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 정말 좋은 경험이 되어서 더 발전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 보고요.. ^^
다만 역대 스포츠 종목들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단 한번의 실수를 극복하지 못해 인생의 성장 곡선이 끊어지고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간 비운의 스포츠 스타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저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가장 안타까운 선수는, 불가리아의 리듬체조 대표 선수였던 비앙카 파노바(Bianka Panova) 입니다.

1987년 세계 리듬체조 선수권 대회에서 역사상 전인미답의 전종목 10점 만점을 받아 버리며(기네스북에도 올라감) 사마란치 당시 IOC 위원장으로부터 직접 우승컵을 받았던 16세의 외계(!) 소녀였죠.
1987년 세계선수권대회 中 리본 경기. 역시 심사위원 전원 10점 만점!!
당시 그녀의 잔상이 얼마나 강렬했으면, 20년이 지난 아직도 해외 동영상 사이트들에는 그녀를 기억하는 팬들이 아래와 같은 동영상들을 편집해서 올려놓은 것을 쉽게 찾을 수 있죠.
비앙카 파노바가 당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것은, ‘신의 공평함의 원칙’을 깨버리고;; 실력과 정비례해 버린 요정 같은 외모 때문이었는데요... ㅜ.ㅡ
연예인이나 해외 스타에 거의 관심이 없었던 저 조차도.. 당시 일기장에 그녀의 이름을 적었을 만큼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었죠.. ㅠ.ㅜ


그치만 불가리아라는 나라가 정확히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현실을 직시하며 꿈에서나 운 정말 좋으면(!)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저의 막연한 공상을 단번에 깨뜨리며..
그야말로 기.적.처.럼. 실제로 저는 그녀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것도 반경 1m 안에서 말이지요!
88 서울 올림픽에 소련이 참가 의사를 밝히면서 동구권 국가들이 줄줄이 동반 참가 의사를 밝혀준 덕에 전년도에 전종목 10점 만점의 대기록을 작성하며 화려하게 세계무대에 눈도장을 찍어두었던 비앙카 파노바가 서울에 오는 꿈에도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고!!

더더더더더더욱이... 기적이 일어나 버린 것은, 당시 제가 재학하고 있었던 고등학교의 체육관이 올림픽 리듬체조 선수 연습장으로 지정이 되어버리는 갓 블레스 급의 기적이 일어나 버린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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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줌마들이 왜 배용준 얼굴 몇초라도 보려고 공항까지 나가서 진을 치고 있는지.. 그 심정을 저는 쪼끔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
그때 비앙카 파노바를 제 눈으로 직접 본 것이 제 인생에 얼마나 큰 감흥을 주었는지.. 저는 체감했기 때문입니다.. ㅜ.ㅜ
그리고 가능하면 그 순간을 담아 두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억지로 친구 녀석에게 카메라를 빌려서 학교에 가져갔는데요. (그 시절에 디카 같은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ㅜ.ㅡ)
근데.. 흐흐흐흑....
불가리아 대표팀이 다음날 연습장을 떠나 버린 것이었습니다... >.<
그때의 그 허탈함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울컥할 정도인데요.. ㅠ.ㅠ
그 허탈함을 보상 받고자(애써 빌려온 카메라 그냥 가져가기도 억울해서;;) 그냥 연습장에 남아 있던 선수들 몇명 모이라고 해서.. 찍은 사진이 아래 사진입니다.

그로부터 몇일 뒤,
대망의 리듬 체조 경기가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서 열렸습니다.
몇일 전, 실제로 봤던 비앙카 파노바 선수가 TV에 나오자.. 확실히 예전하고는 다른 친금감(?) 비슷한 감정까지 복받쳐 올라 완전 흥분하며 경기를 관전했죠.. ㅜ.ㅡ
그런데.
문제의 곤봉 경기였습니다.
상대적으로 다른 종목에 비해서 곤봉이 좀 약하다는 평가(어디까지나 상대적)를 받아왔던 비앙카 파노바였습니다만, 그럼에도 예선에서 그녀는 아래와 같은 만점 연기로 이미 금메달을 예약해 놓고 있었지요.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정작 중요한 결선 경기에서..
전종목 10점 만점의 기량을 갖추고 있었던 파노바의 손이.. 솟구쳐 올랐다가 떨어지는 곤봉을 받아내지 못했고(허리를 뒤로 꺾어 곤봉을 받아내는 파노바의 최고 기술!)
너무나 심술궂게도 떨어진 곤봉이 럭비공처럼 튀어 올라 무려 매트 밖까지 튕겨 나가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곤봉을 다시 주우러 매트 밖까지 뛰어 나갔다 돌아오는 그 짧은 순간이 당시 TV를 보고 있던 제게는 정말정말 길게 느껴졌습니다. 아나운서, 해설자의 안타까운 탄식이 이어졌고 체조 여왕의 얼굴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올림픽에서 리듬 체조는 종목별로 순위를 매기는 것이 아닌, 전종목을 합산해 메달 리스트를 정하는 것이라 곤봉에서의 저 엄청난 감점은 나머지 종목을 아무리 잘 하더라도 메울 수 없는 치명적 실수
올림픽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종이 한장 차이 같은 실력을 가늠하는 대회이고, 저 바늘 끝 같은 순간의 실수 하나로 비앙카 파노바라는 기대주의 성장 곡선은 끊어지고 맙니다.
물론 그녀는 그것으로 포기하지 않고 다음번 올림픽(바르셀로나)을 설욕의 무대로 재기 의지를 분명히 하지만, 불가리아 체조계 파벌 다툼의 희생양으로 후배 마리아 페트로바에게 올릭픽 출전권이 부여되면서(그나마 마리아 페트로바는 바르셀로나 올릭픽 노메달. 이후 불가리아의 리듬체조는 사실상 몰락의 길로 들어섬)
비앙카 파노바라는 외계인급 기량과 요정 같은 외모를 지닌 선수의 존재감도.. 88 올림픽 때의 저 아픈 기억과 함께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잊혀져 가야했던 것입니다.. ㅜ.ㅡ
송락현 ☺ http://kr.blog.yahoo.com/anicapsule

그런데 나중에 알게된 개인적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어서 추가해 봅니다.. ^^
다시 한번 아래 사진을 잘 봐주시기 바랍니다.

왼쪽 첫번째 키 큰 은발 소녀.
정작 사진 찍을 때는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셔터를 눌렀는데, 나중에 그녀의 이름을 너무나도 쉽게 알아내 버렸지요.(설마 제 카메라에 찍혔을 줄이야.. ㅡㅡ+)
88 서울 올림픽 때 비앙카 파노바를 누르고 금메달을 땄던.. 소련의 마리나 로바츠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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