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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일본 연예계에서는 매우 충격적인 사건 보도가 있었는데요, 한때 J-POP계를 호령했던 일본 음반업계의 마이더스의 손 코무로 테쯔야(小室哲哉, 49)의 체포 뉴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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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최전성기를 누리던 1990년대 후반은 국내에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어 있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당시 국내 일음 매니아들 사이에서 T.K(Tetsuya Komuro의 영문 이름 이니셜)의 존재감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trf, globe, H Jungle With t, DOS, H.A.N.D, hitomi, 시노하라 료코, 쯔이 레이, 아무로 나미에, 카하라 토모미, 미즈키 아리사, 우치다 유키 등등·· 당시 기준으로 그 이름만 나열해 보아도 눈이 동그래지는 J-POP 최전선의 가수들이 모두 그가 만들어낸 뮤지션들이었으며, 방송국에서는 이들 T.K 패밀리의 출연 여부에 의해 시청률이 담보 잡힐 정도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죠.
이러한 지지 기반을 토대로 당시 코무로 테쯔야는 경제 대국 일본의 웬만한 재벌 그룹 총수들까지 제치고 연간 개인 소득세 납부 랭킹 4위(1년에 세금만 11억 7천만엔 납부)에 올랐을 정도였고, 내일 당장 백수가 되더라도 자신이 작곡한 800여 곡의 히트곡 로얄티로만 연간 2억 엔의 수입이 보장되어 있는(망하고 싶어도 망할 수 없는) 하늘 위를 걷고 있었던 인물.
그랬던 그가, 불과 10년이 안 되는 세월 만에 100억엔 대의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완전히 파산하여 도리어 15억 엔의 빛을 짊어진 사기 협의자로 경찰에 체포된 것입니다.
코무로 테쯔야가 만들고 혹은 불렀던 많은 히트곡들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의 한명으로서 참으로 어처구니 없고 또 한편으론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오늘은 그의 성공과 추락의 인생 역정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송락현 ☺ http://kr.blog.yahoo.com/anicapsule
일본 대중음악계에는 이른바 3대 프로듀서 전성기가 있었습니다만.. 빙 프로덕션의 나가토 타이코, Mr. Children이라는 불세출의 그룹을 키워낸 코바야시 타케시, 그리고 AVEX의 코무로 테쯔야가 바로 그들이었죠.
그런데 이들 빅3 프로듀서 중에서 코무로 테쯔야가 유독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것은 다른 프로듀서들처럼 무대 뒤의 조력자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전면에 나서서 진두지휘를 하는 한편, 심지어는 자신도 특정 유니트(globe)에 소속되어 쇼 프로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코무로가 이처럼 무대 활동에 집착한 까닭을 알기 위해서는 그의 J-POP계 데뷔 이력을 추적해 보아야 하는데요. 그것은 그의 출신성분이 뮤지션 출신이었기 때문이죠.
 왼쪽부터.. 키네 나오토(기타), 우쯔노미야 타카시(보컬), 코무로 테쯔야(키보드)
코무로 테쯔야는 음악성 보다는 외형적 인기로 먹고 살던 아이돌 가수들의 최전성기였던 1980년대 중반, TM Network라는 이색 3인조 그룹으로 J-POP계에 등장 했습니다. 당시 TM Network는 기존의 아이돌 가수들과는 달리 영국의 듀란듀란과 같은 팝 댄스 음악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20세 이상의 성인 여성층에게 특히 주목을 받게 되는데요.
여기에 또 하나!
오늘날 타이아프(가수가 신보를 발표하면서 인기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의 주제가로 곡을 제공해 프로모션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라는 별칭으로 거의 시스템화되어 있는 음반 홍보 전략을 일찍이 도입하여 아이돌 가수들과는 다른 경로로 팬들과의 접촉을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1985년에 일본 최고의 바이올런스 호러 소설가 키구치 히데유키(원작) + 아마노 요시타카(삽화) 콤비의 베스트셀러를 기초로 애니메이션화된 작품 뱀파이어 헌터 D의 주제가 'Your Song'이 바로 그 첫번째 곡으로 특히 코무로 테쯔야는 이 작품의 음악 전체를 맡아 원작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를 정말 실감나게 재현해 내죠.
이 작품을 기폭제로 TM Network는 인기 애니메이션들의 주제곡을 잇달아 부르게 되는데, 1987년 요미우리 TV에서 방영된 호죠 쯔카사 원작의 시티 헌터의 엔딩 테마곡 'Get Wild'는 당시 일본 내 모든 음반 차트를 석권하며 그해 TM Network를 NHK 홍백전에까지 출장 시키게 합니다.
처음으로 TM Network의 존재를 알린 곡 Get Wild. 참고로 이 무렵 TM Network에서 기타를 쳤던 마쯔모토 타카히로는 현재 음반 판매 누계 일본 최고 기록을 계속 경신중인 B'z의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또한 이듬해 봄에는 일본 최고의 인기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의 극장판 '역습의 샤아'편의 주제가인 'BEYOND THE TIME'을 불러 역시 싱글 음반 판매 랭킹 1위를 질주했으며, 여름에 개봉된 미야자와 리에(일본 스모계의 최연소 요코즈나였던 다카노 하나와의 결혼 직후 파경으로 화제가 되었던 대표적 아이돌 가수, 국내에는 누드집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음)의 영화 데뷔작이자 일본에서 활동중인 재일교포 최양일 감독의 작품 우리들의 7일간의 전쟁의 주제가 'Seven Days War' 역시 공전의 인기를 누린바 있죠.
기동전사 건담 - 역습의 샤아의 주제가였던 BEYOND THE TIME. 애니메이션 주제가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린 곡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방송인 쿠로야나기 테쯔코(창가의 토토의 저자로도 유명)가 오랜 기간 진행했던 The Best Ten에도 랭크되어 건담의 프로모션을 톡톡히 해준다.
이밖에도 각종 TV 드라마의 주제가를 비롯하여 소설, 만화 등의 이미지 앨범에 이르기까지 TM Network가 히트를 시킨 곡들은 그들의 활동 기간에 대비해 보았을 때 꽤 많은 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코무로 테쯔야는 단기 다작에 강한 면모를 보이면서도 음악성이 떨어지지 않는 완성도 높은 곡들을 만들어 왔는데, 그중에서도 카도카와 하루키가 50억 엔(역대 일본에서 만들어진 모든 영상물을 통틀어 사상 최대 제작비)을 투여해 만들었던 초대작 영화 하늘과 땅과의 음악은 코무로 테쯔야의 천재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걸작 음반으로 이전까지 그에게서 풍기던 이미지를 일순간에 뒤집은 놀라운 결과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나름대로의 음악성을 고수하며 입지를 다져나가던 1994년 4월 21일.
돌연 TM Network(1990년부터는 TMN으로 개칭)의 해체 비보가 날아듭니다. 대외적인 해체 이유는 애초부터 TM Network(Time Machine Network)라는 그룹 자체가 10년 동안만 함께 활동하기로 약속한 프로젝트 그룹(TM Network의 첫번째 싱글인 '금요일의 라이온'이 발매된 것이 정확히 1984년 4월 21일)이었다는 것이었죠.. ㅜ.ㅡ
하지만 오히려 코무로 테쯔야는 TMN의 해체 이후 프로듀서로 홀로서기에 성공하면서 실질적인 전성기를 구가하게 됩니다.
물론 처음에는 프로듀서에 대한 선입견(특정 가수의 신보 취입 기획이나 판매 관리 등을 담당하는 음반사 소속 직원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 때문에 일각에서는 코무로 테쯔야의 프로듀서 변신을 현역 은퇴로 받아 드리는 분위기였습니다.
물론 1990년대 초반 빙(BEING) 프로덕션의 나가토 타이코(B.B 퀸즈, 튜브, B'z, WANDS, ZARD, 오구로 마키 등의 대형 뮤지션들을 길러낸 인물)라는 거물 프로듀서가 등장하면서 프로듀서의 비중이 커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역시 무대 뒤에 가리어진 배후 조력자에 불과 했죠.
하지만 코무로 테쯔야는 자신이 직접 전면에 나서서 무대 위를 장악했다는 점에서 이전까지의 프로듀서들과 분명한 차별점을 보여 주게 됩니다. 자신이 직접 신인을 발굴해내고 그에 맞는 음반 제작을 하고 있음은 물론 함께 쇼 프로 등에 출연해 연주를 하거나 노래를 부른 것이죠.
T.K의 대표적 히트작들
trf
 Tetsuya komuro Rave Factry라는 의미를 지니고 지난 1992년 결성되어 데뷔 2년 만에 토탈 음반 판매량 1,000만 장 돌파라는 사상 최고 기록을 세운 5인조 댄스 그룹. T.K의 유일한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또 한명의 T.K(Takeshi Kobayashi) 프로듀서의 미스칠(Mr. Children)과 도리캄(Dreams Come True), B'z와 함께 1990년대 초반 J-POP계의 BIG 4로 군림했던 trf는, 코무로 테쯔야가 프로듀서로 기반을 마련하는 것에 최일선에 섰던 대표적 유니트.
아무로 나미에

아무라 현상(아무로의 패션 따라 하기)이라는 신종 신드롬 까지 창출해 내며 10대의 나이에 자타가 공인하는 일본 최고 디바로 부상했던 가수. 당시 10대의 교주로 불리우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10대들의 맹목적인 추종으로 이어졌으며 도쿄돔, 오사카돔, 후쿠오카돔, 나고야돔을 순회하는 4대 돔 공연을 최초로 성공(관객 30만명)시키며 거침없는 인기를 이어갔다. 다만 인기 최정상에 오른 무렵 돌연 trf의 댄서 SAM의 아이를 임신해 1년간 출산 휴가를 떠나시는 해외 토픽을 일으키기도;;
globe

1995년 8월에 결성되어 금단의 영역이었던 음반 판매 400만장의 벽을 허물었던 그룹. 보컬인 KEIKO와 랩퍼인 MARC와 함께 코무로 테쯔야 자신까지 포함된 3인조 혼성 그룹으로 활동(후에 X-JAPAN의 요시키가 멤버로 들어옴)하며 신보가 나올 때마다 역대 음반 판매 기록을 계속 갈아치우며 불후의 명곡 Departures를 남겼다. 참고적으로 보컬인 KEIKO는 코무로 테쯔야의 마지막 아내이며 당시 결혼식이 TV로 생중계되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카하라 토모미

아무로의 임신 사실이 공표된 직후, 이와는 대조적으로 16년의 나이 차를 두고 코무로 테쯔야와의 결혼을 발표하며 한때 T.K 패밀리의 공주로 떠올랐던 가수(Tomomi Kahara는 본인이 T.K의 분신이라는 의미로 지은 예명). 그러나 실연 후 여러차례의 자살 시도와 기행으로 연예계의 음지를 전전한다. 최근 코무로 테쯔야가 충격적인 파국을 맞이하자 이것을 악용해 돈을 벌려는(코무로 테쯔야 폭로집 출간 등)하려는 브로커들이 접근하고 있다는 씁쓸한 뉴스들도 떠다니고 있다.
시노하라 료코

애니메이션 주제가로는 유일하게 음반 판매량 200만 장을 돌파했던 극장판 <스트리트 파이터.II>의 주제곡 '그리움과 안타까움과 마음 든든함과' 역시 코무로 테쯔야의 작품. 이 노래로 전국구 스타가 된 시노하라 료코는 현재 탤런트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이 밖에도 코무로 테쯔야는 개그맨 하마다와 장난 삼아(^^:)함께 결성했던 H Jungle With t(Wow War Tonight이란 곡으로 음반 판매 213만 장을 기록)를 비롯하여 DOS, H.A.N.D, hitomi, 쯔이 레이, 미즈키 아리사, 우치다 유키 등과 같은 진용으로 무적의 T.K 패밀리를 완성하는 한편, 사카모토 류이치(마지막 황제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던 음악가)와 같은 대작곡가와 뮤직캠프를 여는 등 일본의 대중음악계를 완전히 석권하게 됩니다.
1996년 4월 15일자 오리콘 싱글 음반 차트
1위 Don't Wanna Cry 아무로 나미에 2위 I'm proud 카하라 토모미 3위 FREEDOM globe 4위 Baby Baby Baby DOS 5위 Love & Peace Forever trf
*1위 부터 5위까지를 T.K 패밀리가 독식하는 초유의 기록 작성
또한 오래 전서부터 음악적 유대를 함께 해오고 있는 X JAPAN의 요시키와도 특별한 인연을 이어오며(각기 댄스 음악과 락 음악을 해오고 있지만 두 사람 모두 클래식 음악에 기초를 두고 있음), 특히 지난 1991년에는 모차르트 사후 200주년을 기리기 위한 프로젝트 그룹 V2를 결성하여 도쿄 베이 NK 홀에서 SPECIAL LIVE 'VIRGINTY'라는 합동 공연을 하기도 했었죠.

그런데 코무로 테쯔야가 프로듀서로 대성공했던 것에 대한 특징을 분석해 보자면, 먼저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B급 가수들을 찾아내어 밀리언셀러의 대형 가수로 바꿔 놓았다는 점입니다.
그중에서도 T.K 패밀리의 최고 히트작 중에 한명인 아무로 나미에의 경우는 도시바 EMI 소속 시절 고작 7만장의 음반 판매량을 보인 거의 C급(?) 가수에 불과 했지만 코무로 테쯔야에게 픽업된 이후, 체계적인 스타 만들기 시스템에 의해 최단기간 200만장 아티스트 진입(싱글과 앨범이 모두 200만장을 돌파한 가수들에게만 돌아가는 칭호)과 최연소 레코드 대상까지 거머쥐면서 명실상부한 일본 최고의 인기 가수로 도약하게 되죠.
아무로 나미에 이외에도 T.K 패밀리를 구성하고 있는 가수들 대부분이 본래는 무명의 가수들로서 어떻게 코무로 테쯔야가 이들의 재능을 사전에 내다 볼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이것도 코무로 테쯔야의 숨겨진 능력 때문으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그것은 코무로 테쯔야의 경우 애초부터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를 찾아내기 보다는 '곡을 가수에 맞추면 된다'는 주의로 노래를 만들었기 때문인데, 즉 가수 개개인의 음역을 정확히 판독하여 장점은 살려주고 단점은 피해가는 형식으로 악보를 썼다는 것이죠.
코무로 테쯔야가 프로듀서 겸 작곡자로 열정적인 활약을 한 시기는 TMN 해체 이후인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약 7년 정도로 볼 수 있는데, 그는 저러한 가수 맞춤형 작곡 제약 속에서도 무려 806곡에 달하는 노래들의 멜로디를 남겨 놓았습니다. (7년간 3일에 1곡씩 노래를 만들었다는 소리)
전성기 시절 T.K 사단의 입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COUNTDOWN LIVE. T.K 패밀리 소속 가수들이 12월 31일 밤에 모두 모여 함께 신년 카운트다운을 외치고 노래를 부르는 일종의 파티와도 같은 것이었는데, 이것을 중계하기 위해 국영방송 NHK가 홍백전을 평소보다 10분 일찍 끊고 쥴리아나 도쿄(AVEX 레이블의 대중화를 이끈 롯폰기의 클럽) 특별 스테이지를 연결해 생중계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하늘 위를 걷고 있었던 T.K 제국이 몰락하게 되는 전조는 약간 어처구니 없게도 한명의 신인 여가수를 둘러싼 분쟁에서 시작됩니다. 코무로 테쯔야는 1998년, 일본 최대의 대형 신인 오디션 프로그램 ASAYAN에서 13,500:1의 경쟁률을 뚫고 1위를 차지한 20세기 최후의 기대주를 획득하게 되는데, 바로 그가 스즈키 아미 였습니다.

코무로 테쯔야는 스즈키 아미를 아무로 나미에를 능가하는 히트작으로 키우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이며 그 결과 1998년의 모든 신인상을 스즈키 아미가 휩쓰는 최단 기간, 최대 효과를 이루게 되죠.
그러나 스즈키 아미의 부모들은 딸이 소속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여 소속사를 고소하는 비화가 발생하고, 이 분쟁의 후유증으로 스즈키 아미가 연예계를 은퇴하는 소동이 일어나면서 코무로 테쯔야의 프로듀서 인생에 오점이 찍히고 맙니다.(코무로는 소속사의 입장과 달리 스즈키 아미를 잃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지만, 허사로 끝남)
무엇보다 당시는 코무로 테쯔야가 세계 진출이라는 숙원 사업을 이루기 위해 뉴스 코포레이션사의 루퍼드 머독(20세기 폭스와 LA 다저스를 인수한 호주의 미디어 재벌)과 함께 각기 100만 달러씩을 투자해서 TK NEWS 라는 합작 음반회사를 홍콩에 설립했던 매우 중대한 시기이기도 했죠.
그런데 중간에 머독이 사업에서 손을 떼면서 난항이 발생하는데, 미련이 남은 코무로 테쯔야는 단독으로 로잠(Rojam) 엔터테인먼트라는 음반회사를 그 후신으로 다시 설립하는 모험수를 감행합니다.
그러나 2001년 5월 홍콩의 신흥시장에 상장된 로잠사의 주식은 계속 곤두박질하여 1년 만에 12억 엔의 적자를 떠안게 되며, 무엇보다 발매한 음반들이 대부분 중국에서 해적판으로 유통되는 바람에 손실 규모가 계속 커져 결국 2004년 코무로 테쯔야는 무려 70억 엔의 부채를 떠안은 채 사업을 철수합니다.
그리고 이후로 코무로 테쯔야라는 이름은 대중들로부터 잊혀지게 됩니다.
미주 최고의 보이그룹이었던 Backstreet Boys의 앨범에 참여하고, 영화 스피드2의 음악을 맡으며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한편, 전자음악의 세계적 거장 쟝 미셀 자르와 98 프랑스 월드컵 오프닝 송(Together Now)을 함께 만들기도 했던 아시아 최고의 음반 프로듀서(음반판매 총계 1억 7천만 장)는 그렇게그렇게 현역에서 물러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기준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차라리 저렇게 잊혀지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늘 위를 걷고 있었던 사람이었기에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기 보다는 더 큰 무리수를 두어가며 또 다른 사업을 일으키며 재기를 노렸고(연 60%의 사채를 끌어다 씀)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가장 소중한 재산인 히트곡들의 저작권마저 팔아치워야 했고, 결국에는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이미 권리가 상실된 곡들의 저작권이 자신에게 있는 것인 양 사기행각을 벌이는 인생의 막차를 타버리게 된 것이죠.

코무로 테쯔야가 졸업한 와세다 실업학교에는 코무로가 10억 엔을 기부해 건립한 코무로 테쯔야 기념홀이 있습니다. 그리고 코무로 테쯔야는 이 학교 역사상 단 2명 밖에 이름이 올려져 있지 않은 교빈중 한명이죠.(또 한명은 전 소프트뱅크 호크스 감독 왕정치)

그러나 코무로 테쯔야의 체포 소식이 전해진 후, 학교가 교빈 자격 박탈 의사를 밝히면서 순식간에 부와 명예를 모두 잃어버리는 처지가 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 것입니다.
불과 10년 사이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진 코무로 테쯔야의 모습은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사업가로서가 아닌 음악가로서의 코무로 테쯔야의 모습을 기억하는 팬의 한사람으로서 다시 한번 그가 만든 노래들을 듣고 싶은 바램을 남겨 놓습니다.
SEVEN DAYS WAR TMN - LAST GROOVE 5.18
관련 추가 글 http://memolog.blog.naver.com/k2zeby/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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