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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의 경우는 순정이라는 장르 구분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내려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초의 작품을 가려내는 것 역시 의견이 분분하다.
개중에는 1949년에 월간 교양지 <소녀>에 연재된 <안미쯔 공주>를 최초로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데즈카 오사무의 <사파이어 왕자 1953>를 일본 순정만화의 효시로 규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본격적인 소녀만화 전문지 <소녀 클럽>에 연재되었다는 점 이외에도 미형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감성적인 테마의 설정 등 이후 순정만화라고 불리게 될 많은 작품들의 표본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재미있는 것은 주인공이 왕자의 신분을 가지고 있지만 여자라는 점이다. 즉 나약한 여자가 남장을 하고 악한 남자들을 혼내 준다는 내용을 깔아 놓음으로써 여성팬들에게 커다란 대리 만족을 선사해 주었던 것이다.

최초의 순정만화는 <사파이어 왕자>라고 할 수 있지만, 실질적인 순정만화 붐을 몰고 온 작품으로 <들장미 소녀 캔디>를 꼽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국내에서는 지난 1977년에 방송된 바 있는데, 두 번째 앵콜 방송에서 주제가를 당시 국내 최고 인기 여가수였던 혜은이가 불러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주인공 캔디를 비롯하여 안소니와 테리우스, 아치볼트, 스테아, 스잔나··· 등의 주인공들 이름은 당시 웬만한 연예인들의 이름보다도 유명할 정도였으며, 특히 지겹도록 캔디를 괴롭혀서 거의 전국민의 미움을 샀던 악역 인물의 대명사 이라이자는 평소 성품과는 별개로 독특한 헤어스타일이 주목을 끌어 한때 이라이자 헤어스타일이 유행을 끌기도 했다.

이만하면 당시 캔디 신드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조금은 실감이 갈 것이다. 이같은 캔디 열풍은 본래 제작국인 일본은 물론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세계를 강타했다.(특히 유럽에서 대히트)
<들장미 소녀 캔디>가 문화적 차이가 있는 전세계에서 고루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감동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아이지만 자신의 처지를 탓하지 않고 언제나 밝고 명랑하게 생활하는 캔디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어린이들이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들장미 소녀 캔디>가 순정만화사에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남고 있는 것은 사랑에 눈뜨기 시작한 한 소녀의 맑고 투명한 마음이 아주 잘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물론 테리를 가운데 두고 캔디와 스잔나 사이에서 전개되는 갈등 구조는 흔한 3류 멜로 소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마지막에 테리에 대한 스잔나의 사랑을 확인한 캔디가 스스로 물러남으로써 이 작품은 진한 감동을 여운을 남겨 놓게 된다.

<들장미 소녀 캔디>는 순정만화가 대중적인 붐을 이루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작품으로 국내 순정만화가들 중에도 어린시절 캔디를 보고 만화가가 되기도 결심했다고 말하는 작가들이 상당수 있을 정도로 이 작품의 존재감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만들어지기는 <들장미 소녀 캔디>와 비슷한 시기(1979년)였지만, 국내에 정식 소개된 것은 그보다 한참 뒤였던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또 다른 가치를 지니는 작품이다.
본래 이 작품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 <마리 앙뜨와네뜨>를 읽고 감명을 받은 만화가 이케다 리요코가 새롭게 만화로 재구성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3자의 입장에서 프랑스 혁명을 이처럼 그럴싸하게 묘사해낸 것은 대단한 시도로 평가 받게 된다.

물론 이 작품의 주인공 오스칼 프랑소와 드 자르제는 실존했던 인물은 아니고 그의 아버지인 자르제 장군만이 실제로 있었던 인물로 전해지는데, 순정만화사에서 오스칼이라는 캐릭터가 차지하는 의의는 <사파이어 왕자>에서 처음으로 어필되었던 전통적인 남존여비 사상에 대한 여성들의 반발심을 그대로 대변해 냈다는 것일 것이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여려서부터 남자로 키워진 오스칼은 여자로서의 약점을 극복하고 모든 면에서 남자들보다 우월하게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오사칼에게 여자로서의 매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왕비인 앙뜨와네뜨에게 있어서는 정신적인 지주가 될 만큼 강하고 용기 있는 근위대장의 모습을 보이다가도 사랑하는 페르젠 앞에서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아름다운 여성으로의 매력을 발산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스칼의 이러한 모습은 스스로를 남자도, 여자도 아닌 혼란스러운 인생의 속박에 갇혀 살게 했으며, 어렵게 페르젠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고 앙드레를 인생의 반려자로 받아들일 무렵에는 이미 프랑스 혁명의 회오리 속에서 인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이밖에도 <베르사이유의 장미>에는 단지 사랑하는 대상이 왕비라는 이유로 역시 사랑을 이루지 못한 페르젠과 앙뜨와네뜨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이야기가 어수선한 역사의 전주곡 속에서 슬프게 펼쳐지고 있으며, 신분 상승만이 목적이었던 포리냐크 백작 부인에 대한 에피소드와 쟌느와 로저리 자매의 엇갈린 인생 이야기를 통해서 귀족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기도 하는 등 정말로 많은 생각을 하게했던 내용들이 담긴 명작이었다.


베르사이유의 장미 중반부의 최고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는 진주 목걸이 재판 장면 (만화 속 인물이지만, 쟌느라는 이 캐릭터를 보고 있으면 왠지 신정아 스캔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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