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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도 3월 31일자, 오리콘 앨범 차트(일본의 빌보드 차트라고 할 수 있는 음반 판매 순위표)에 신출귀몰한 한 음반이 불과 발매 10일 만에 랭킹 9위에 진입하는 이변이 발생 했다.

앨범의 이름은 ANIMETAL MARATHON이었고 노래를 부른 그룹의 이름은 ANIMETAL이었다. 대체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떻게 이들은 무명의 신예 그룹으로서 단숨에 메이져계의 앨범 판매 랭킹 10위안에 입성할 수 있었을까?
공식앨범의 발매와 함께 일본 대중 음악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 신종 그룹이 들고 나온 무기는 다름아닌 만화주제가 메들리였다.
물론 이전에도 과거의 인기 만화 주제가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어서 발매한 기획 앨범들은 많이 있었지만, 이 ANIMETAL의 경우는 그룹의 이름에서부터 암시가 되고 있듯이 그동안의 인기 만화 주제가들을 헤비메탈 곡으로 어렌지하여 불렀다는 점이다.
이 앨범 안에는 모두 36곡의 만화 주제가들의 숨돌릴 틈 없이 촘촘히 수록되어 있는데, 우리 귓가에도 친숙한 멜로디로 남아 있는 <마징가Z>를 비롯하여 <독수리 5형제>, <신조인간 캐산>, <컴배틀러 V>, <타이거 마스크>, <사이보그 009>, <은하철도 999>, <우주전함 야마토>, <기동전사 건담>,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데빌맨>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일본의 국민적 사랑을 받아온 애청 만화 주제가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헤비메탈 사운드로 녹음되어 있다.
때문에 이 앨범을 듣고 있노라면 과거의 그 유치찬란한 가사와 멜로디의 만화 주제가들이 현대 대중 음악의 최고난도 연주 장르라고 할 수 있는 헤비메탈 형식과의 조합을 통해 만들어진 언밸런스함에 아이러니컬한 음악적 쾌감을 만끽 하게되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폭발적인 사운드와 함께 뚫고 나가다보면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통쾌함 마저 느끼게 한다.
그런 이유로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발매 당시 일본의 가라오케 무대에서 가장 많이 불려진 노래들로 뽑히기도 했는데,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ANIMETAL의 앨범이 나오게 된 계기가 바로 다름아닌 가라오케에서 였다고 한다.
이야기의 최초 발단은 1996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룹 ANIMETAL의 리더이자 보컬인 사카모토 에이조(坂本英三)는 그 당시, 정말 믿기지 않게도 일개 택시 기사의 신분 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밤, 만취한 승객 한명이 술을 마시고 가라오케에 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지 택시 기사인 사카모토에게 함께 가라오케에 가자고 통사정을 했다고 한다. 좀 어이가 없는 제의 였지만 연말이고 해서 기분도 낼겸 그승객과 함께 가라오케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 사카모토 에이조라는 인물은 비록 신분은 택시 기사 였지만 과거⑴가 있는 퇴역(?) 보컬로서 그날도 평소 습관대로 동석한 승객 앞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주제가들을 특유의 가래 끓는 창법으로 미친 듯이 악을 질러가며 자칭(?) 헤비메탈 사운드로 불러제낀 것이었다!
순간, 그의 열창 스테이지에 감탄한 승객은 술기운도 잊어버린 채 "바로 이거다!"라고 외쳤으니 그 승객의 신분이 다름아닌 일본 SONY 레코드사의 고위 간부 였던 것이었다.
결국 이러한 만화 같은 신데렐라 스토리(?) 속에서 그룹 ANIMETAL은 결성 되게 되었고 시범적으로 발매한 2장의 싱글이 모두 대호평을 받음에 따라 마침내 첫 번째 공식 앨범 ANIMETAL MARATHON이 발매된 것이었다.
이 앨범은 1997년 일본에서 가장 주목 받은 앨범중에 하나로서 만화 관련 음반들 중에서는 거의 5개월 가량 인기 순위 독주를 했으며 라이브 실황을 편집한 뮤직 비디오가 웬만한 OVA 작품들 보다 더 많이 팔렸는가하면, 특히 여름 시즌에는 스포츠 만화영화 주제가들만을 모아 구성한 제 2집 ANIMETAL SUMMER가 발매되어 또 한차례 ANIMETAL 붐을 이루며 10여종이 넘는 ANIMETAL 아류 앨범들의 제작까지 부추긴바 있다.

게다가 얼마뒤엔 요술 공주 시리즈를 느끼한(?) 헤비메탈 곡으로 불러 화제를 모으고 있는 ANIMETAL LADY가 결성되어 ANIMETAL과 합동 라이브 콘서트를 가졌으며 그와함께 <기시와다 박사의 과학적 애정>이라는 작품의 드라마 CD판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ANIMETAL은 단순히 고전 만화 주제가를 가져다가 흥이 나는대로 부르는 1회용 프로젝트 그룹 딱지를 떼고 어엿한 정식 그룹으로 또다른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바로 그들에게 드디어 오리지날 만화 주제가의 청탁이 갔기 때문이다. 그것도 알려지지 않은 비인기 작품이 아닌 국내에서 까지 현재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바람의 검심, るろうに劍心> 극장판의 엔딩 테마곡을 부르게 된것이었다.
물론 ANIMETAL의 성공 요인은 그들의 음악적 완성도가 탁월해서라기 보다는 기획의 참신함이 대중들을 어필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하지만 유치하고 단순한 것에 디테일이 부여되면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문화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 ANIMETAL의 앨범은 정말 좋은 사례를 만들어 보여준 것이었다.
 ⑴ 본래 사카모토 에이조는 택시 기사로 전업하기 전까지 일본을 대표하는 유명한 헤비메탈 밴드 앤섬(ANTHEM)의 리드 보컬 리스트였다. 북해도 태생으로 도쿄대에 입학하였지만, 넘치는 음악적 열정으로 앤섬을 만들고 이 밴드가 라우드니스(LOUDNESS)와 더불어 일본을 대표하는 밴드가 되는데 큰 공헌을 했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1987년 앤섬을 탈퇴 하고는 렌마 마쵸맨(練馬 マッチョマン)과 렌마 절규구락부(絶叫俱樂部)를 만들어 독립 활동을 시작 했으나 여의치 않아 이후 택시 기사로 전업했다.(실제로 몇몇 인기 락 밴드를 제외한 대부분의 일본내 락 그룹들은 사회적으로 무시를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종종 멤버들은 생계 유지를 위해 트럭 운전 등의 부업을 하기도 함.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부끄럽다거나 수치스럽게 생각 하지 않음)
그리고 사카모토 에이조 이외의 애니메탈에 참가한 뮤지션들도 모두 나름대로 헤비메탈 팬들에게는 이름이 알려진 인물들이다. 먼저.. 타케-싯은 일본의 대표적인 하드코어 밴드인 코코뱃(COCOBAT)의 멤버, 드럼을 친 우메자와는 사카모토와 마찬가지로 80년대부터 활동해온 베테랑.
 합동 콘서트 때의 사카모토 에이조와 ANIMETAL LADY의 보컬 MIE. 이들의 스테이지 매너는 복장 만큼이나 주책스럽고 종종 고음이 갈라지기도 하며 노래 부르다 숨 막히면 관객을 향해 마이크 돌리기가 일수 이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노래 부르는 모습이 보기에 싫지 않은 것은 자신들이 정말 좋아하는 만화 주제가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열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교에 의해 치장된 선율 보다 꾸밈 없이 솔직 무식하게 만들어진 노래, 그래서 만화 주제가들은 세월이 흐르고 새로운 장르의 음악이 나와도 우리 귓가에 오래 머무는 것이리라.
 ANIMETAL의 첫 번째 공식 앨범인 ANIMETAL MARATHON의 CD 쟈켓. 그런데 이 앨범의 제목이 '마라톤'인 것은, 수록된 곡들의 총 러닝 타임이 정확히 42분 19.5초라는 황당한 이유 때문이다. 또한 ANIMETAL의 글자 도안을 보면 금방 알아 차릴 수 있듯이 전설적인 헤비메탈 그룹 METALLICA 타이틀 디자인을 흉내내고 있으며, 실제 음악을 들어 보면 곡과 곡 사이의 연주부분을 딥 퍼플의 BURN 이나 오지 오스번의 CRAZY TRAIN 등과 같은 곡들을 절묘하게 패러디한 흔적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마디로 정말 재미난 앨범이다.
 어떤 매체든 메가 히트 상품이 하나 나오게 되면 자연스레 그 인기에 편승한 아류품이 만들어지듯이 ANIMETAL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101번째 프로포즈>의 주제곡 SAY YES를 비롯하여 스즈키 유미코 원작의 <시라토리 레이코입니다!> 등등 역대 일본의 인기 TV드라마 주제가들을 헤비메탈로 부른 DRAMETAL이 ANIMETAL의 컨셉을 모방해 곧이어 발매 되었으며, 일본 최고의 인기 특수 촬영 영화 시리즈 <울트라맨>의 역대 주제가들을 역시 헤비메탈화 시킨 '울트라 릴랙스'. 그리고 로봇 만화영화 주제가들만을 전문으로 부르고 있는 강철 형제의 '로보메탈 ZZZ(트리플 제타)'까지 등장 했다.
 한편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음반의 대히트로 택시 기사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사카모토 에이조는, 원조 만화주제가의 제왕 미즈키 이치로가 ANI SONG 세계화를 위해 카게야마 히로노부, 엔도 마사아키, 마쯔모토 리카 등과 결성한 특별 그룹 JAM(Japan Animation Makers) Project의 1기 멤버로 가세해 또 한번 뜨거운 혼을 불사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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