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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7/13
 

 




청계천홍보관에 오시면 청계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사진, 영상, 모형 등으로 표현해 놓은 전시실을 관람할 수 있으며, 공사현장도 가까이서 보실 수 있답니다.
청계천 복원사업에 관심있으신 분들께서는 청계천 홍보관을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 청계천 홍보관 이용 안내
○ 장 소 : 서울시 중구 장교동(청계2가) 한화빌딩앞
○ 운영기간 : 2002.12.26 ~ 복원공사 완료시까지
○ 운영시간 : 매일 오전 10시 ~ 오후 6시
    (매주 월요일 및 신정,설날,추석연휴는 휴관)
   ※ 동절기(11월~2월)운영시간 10시~오후5시

   ※ 그동안 매일 오후 2시 실시하였던 청계천 현장참관은
       공사관계로 더 이상 실시하지 않습니다.

□ 민원 상담실 운영
○ 청계천 복원사업과 관련된 주변지역 주민 및 상인여러분의 민원사항을 접수하고 처리합니다.

□ 오시는 길
○ 지 하 철 : 1호선 종각역 ④번 출구, 2호선 을지로입구역 ③번 출구
   ※ 청계2가 삼일빌딩 방향으로 도보 5분
○ 노선버스 : 74번, 7번, 12-3번(청계2가 하차)
   ※ 20명 이상의 단체일 경우 전화로 예약하시면 더욱 편리하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2171-2461~62)

○ 약 도
   



옛 서울에는 청계천과 14개의 지천에 약 200여 개의 다리가 있었으며, 그 중에서 이름과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다리는 80여 개 정도였다. 요즘에도 쓰는 광교, 장교동, 수표동 하는 지명은 바로 그때의 다리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청계천 본류만 해도 태평로 부근에서 중랑천 합류지점까지 모전교, 대광통교(광교), 장통교, 수표교, 하랑교, 효경교(새경다리), 태평교(마천교·오교), 오간수교, 영도교 등 9개의 다리가 있었으며, 모두 뛰어난 조형미와 역사성을 지니고 있었다.

청계천 본류의 다리들은 각기 사연들을 담고 있었다. 다리 모퉁이에 가게가 있었다는 모전다리, 도성 안의 가장 넓은 다리로 대보름에 다리밟기의 풍습이 성행했던 광통교, 개화기에 유대치가 살았다는 장통방의 장통교, 임금이 자주 건너다니고 정월 연날리기의 중심이었던 수표교, 한양 도성의 일부로 임꺽정이 달아난 통로라는 오간수교 등은 도성 안의 유명한 다리들이었다.

이 다리들 중 오간수문다리는 1908년 일제에 의해, 그 밖의 다리들은 1958년부터 78년까지 광교에서 마장동 사이 청계천이 시멘트 콘크리트로 덮이면서 모두 사라졌다. 오직 수표교만이 장충단 공원으로 옮겨져 살아 남았고 광통교는 제자리에 남았으나 찻길 아래 시멘트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에 짓눌려 있다.

청계천 주변의 다리중 대표적인 것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서린동 124번지 부근에 있던 다리이다. 지금의 보신각이 있는 종로 네거리에서 을지로 네거리 방향으로 나아가다가 청계로와 만나는 길목에 놓여 있었던 다리이다. 조선시대 광통방(廣通坊)에 있던 큰 다리였으므로 대광통교(大廣通橋)라 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북광통교(北廣通橋),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대광통교, 「도성지도(都城地圖)」에는 광통교, 「수선전도」에서는 대광교(大廣橋) 등으로 각각 기록되어 있어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같은 다리를 나타내는 말이며, 일상적으로 대광교 혹은 광교라고 불러왔다.
이 다리에 놓여진 돌들은 조선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의 계비 강씨의 묘를 황화방 정동에서 성북구 정릉동으로 옮기고 당초 묘에 썼던 돌들을 옮겨 다리를 건설하는 데 사용하였다. 왕비의 묘에서 잘 다듬어진 돌들을 다리를 건설하는데 사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나 조선초기의 정치상황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즉 이성계가 자신의 왕위를 강씨의 소생인 방석(芳碩)에게 넘겨 주려 하자 전처 소생인 이방원이 난을 일으켜 정도전과 방석을 죽이는 사건인 왕자의 난이 발생하였다. 이후 정권을 장악한 이방원이 자신의 계모인 강씨의 묘를 옮기는 과정에서 묘에 사용되었던 돌들을 다리로 옮겨 놓은 것이다. 당시 이방원의 강씨에 대한 미움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광교를 중심으로 그 주위에는 많은 상가들이 있어 서울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즉 닭과 계란을 파는 가게, 갓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대나무를 파는 가게, 갓을 파는 가게, 부인의 머리 장식을 파는 가게, 부인들의 패물과 가락지 등을 파는 가게, 신발을 파는 가게, 물감과 중국 과실을 파는 가게, 칠 목기와 장롱을 파는 가게, 잔치 때 그릇을 세 놓는 가게, 채소를 파는 가게, 솜을 파는 가게, 말총·가죽·초·실·휴지·책 등 잡화를 파는 가게, 말안장·등자·굴레 등을 파는 가게, 서화와 책을 파는 가게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항상 광통교 주위에 모여들어 생필품을 팔고 사곤 하였다.

1958년 광통교를 복개한 이후 다리의 돌에 새겨진 문양을 볼 수는 없지만 매우 정교한 구름무늬와 당초(唐草)무늬, 그리고 한가운데 두 손을 합장하고 머리에 관을 쓴 신장상(神將像)을 돋을새김한 돌들이 놓여 있었다. 이러한 문양의 돌을 복개된 청계천 내부로 들어가면 아직도 그래도 남아있어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조흥은행 앞에 옛다리를 축소복원한 모형이 있다.












중구 장교동 51번지와 종로구 관철동 11번지 사이 청계천에 놓였던 다리이다. 이 근방이 조선시대 장통방(長通坊)이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며, 이 다리 부근에 긴 창고가 늘어서 있었다 하여 장창교(長倉橋)라고 불렀고 달리 장찻골다리라고도 불렀으며, 장통교를 줄여서 장교(長橋)라고도 불렀다. 다리 서쪽 기둥에 '신미개조(辛未改造)'와 '기해개조(己亥改造)'의 8자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두 차례에 걸쳐 보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남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내리는 창동천과 회현동을 거쳐 내려오는 물줄기가 소광통교에서 만나고 다시 남산동천의 물줄기와 합하여져 이 다리 앞에서 청계천의 본 물줄기와 합하여 진다. 따라서 장통교를 중심으로 서쪽에는 삼각주를 이루어 넓은 지세를 형성하고 있다. 이 일대는 일찍부터 도성 안 상업의 중심지가 되어 시전상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며, 중앙과 지방 관청의 연락사무를 맡아 보던 경주인(京主人)들의 본거지였다. 뿐만 아니라 19세기 중인으로서 개화 물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선각자적 역할을 수행한 유대치(劉大致)가 장통방 지금의 보신각 뒤편에 살았었다.






중구 수표동 43번지와 종로구 관수동 20번지 사이 청계천 위에 놓여 있던 다리이다. 세종 2년(1420)에 놓았으며 당시는 근처에 말을 매매하던 마전(馬廛)이 있어 마전교라고도 불렸다. 영조 36년(1760)에 하천 바닥을 파내고 수표교 돌기둥에 '경진지평(庚辰地平)' 네자를 새겨 준천(濬川)의 표준을 삼고 또 따로 수표석(水標石)을 세워 장마철에 물이 불어나는 상황을 수시로 적어 홍수에 대비하였으며, 수표교란 이 수표석에 유래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청계천 복개공사 때 철거되어 현재 장충단공원 내에 보존되어 있으며,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 같이 놓여 있던 수표석주(手標石柱)는 보물 제838호로 지정되어 청량리 세종기념회관 뜰 안으로 옮겨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수표교 건너에 왕의 영정을 모셔 놓았던 영희전(永禧殿)이 있었기 때문에 국왕들이 설날·한식·단오·추석·동짓날·섣달 그믐 등 여러 차례 이 다리를 건너 왕래하곤 하였다. 오늘날 장충동에 옮겨져 있는 수표교를 보면 매끈한 화강암을 정교하게 다듬어 엮어 놓았고, 돌난간도 아름답게 꾸며 놓아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다리이다. 무엇보다도 조선시대 자연재해로부터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던 도성 사람들에게 강수량의 정도를 미리 알아 대피하도록 하여 생명을 구할 수 있도록 한 다리라는 점에서도 매우 의미가 깊은 곳이다.
이 다리와 얽힌 이야기로는 숙종이 영희전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수표교를 건너다가 장통방에 있던 여염집에서 문 밖으로 왕의 행차를 지켜보던 아리따운 아가씨를 보고 마음에 들어 궁으로 불러 들였는데 그가 바로 유명한 장희빈이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이 다리는 청계천 물줄기가 도성을 빠져 나가는 지점에 놓여 있던 다리이다. 즉 서울에 성곽을 쌓으면서 청계천 물이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다섯 개의 아치형으로 된 구멍을 만들었고, 그 위로 성곽을 쌓아 올렸으며, 아치 모양의 구멍을 서로 연결하여 성벽 안쪽으로 장대석을 연결하여 다리를 놓았다. 이 다리가 동대문 옆의 오간수문을 설치한 다리이므로 오간수다리라 불렀다. 이 오간수문은 물길이 잘 빠져가기 위해 가설한 것인데 조선시대에는 도성 안에서 죄를 지은 자가 도성을 빠져 달아나든가 혹은 밤에 몰래 도성 안으로 잠입하는 사람들의 통로로 곧잘 이용되기도 하였다. 그 예로 명종 때 전국적으로 사회를 흉흉하게 만들었던 임꺽정의 무리들이 도성에 들어와 전옥서를 부수고 도망갈 때도 이 오간수문을 통해 달아났었다. 이 다리는 1907년 일제가 청계천 물이 잘 흘러가도록 한다는 미명하에 오간수문을 모두 헐어버릴 때 함께 사라지고 콘크리트 다리로 교체되었다가 후에 성곽이 훼손되는 것과 함께 오늘날에는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마전교와 오간수다리 사이에는 조선시대 때 청계천의 하상을 준설하고 여기에서 나온 흙들을 쌓아 인공적으로 만든 산인 가산(假山)이 있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문화중심지
고품격 국제수준의 중추관리 업무중심지
동북아, 유라시아의 한류문화 관광쇼핑중심지
매력과 활력이 넘치는 시민의 생활중심지


  사대문안의 역사성을 지키는 세심한 관리
적정 규모의 개발을 합리적으로 유도 - 점진적 변화 추구
풍부한 역사문화 인프라 조성으로 도심부 경쟁력 강화
공공투자 및 지원 확대로 민간 중심의 개발 활성화


 


 


 


 


 
관리유형 구분
특성보존지구
재개발 금지, 기존 특성의 보존 및 보강
자율갱신지구
주민자력의 갱신 유도, 공공은 환경개선 지원
재개발지구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된 곳, 철거/수복형 재개발
종합정비지구
공공투자에 의한 종합정비가 필요한 곳


 
단기 (2004~2009년) 향후 5년
행·재정적, 제도적 기반 구축
개발움직임이 있거나 시급성이 있는 사업
중기 (2010~2014년) 향후 10년
제도적 보완 선행 후 추진할 사업
일정한 준비과정을 거쳐 추진할 대형사업
장기 (2015~2024년) 향후 20년
여건의 성숙을 기다려 장기적으로 추진할 사업
상당한 준비과정을 거쳐 추진해야 할 대형사업


  인위적이고 과도한 정비계획 지양
서울시는 큰 틀을 정해주고 개발은 민간주도
---단, 전략 재개발구역에서는 서울시의 적극적인 개입
주민, 상인과 협의를 통한 정비
---업종전환에 대한 프로그램개발을 통한 지원


 






  도심교통혼잡, 통과교통 과다
대기오염, 소음 공해 심각
다양한 업종의 혼재로 인한 도심산업의 정체성 부재
역사유적의 훼손



  10년간 인구 5만, 고용인구 8만 감소
사업체 본사는 강남의 63% 수준
재개발 사업의 장기화로 인한 노후화
취약한 도심산업구조 및 경쟁력 지속적 저하






  청계천 주변 지역의 문화자원을 회복, 조성
시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도시 서울 이미지 제고


  노후된 구조물의 철거로 시민 안전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


  도시생태계를 복원하여 환경도시 서울로 전환
개발 → 환경, 자동차 → 사람, 효율 → 형평


  청계천 주변지역은 대부분 노후지역으로 경쟁력 쇠퇴
고부가가치 산업지구로 재편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
청계천 복원을 통한 강북지역 경제활성화로 강남북 균형발전




  사업내용
----홍수조절능력의 상향 및 자연상태로의 하천복원
연장
----총연장 30마일(약 20km)




  사업내용
----6차선 고가도로 철거, 지하 8~10차선 지하도로 건설
----지상부 OPEN SPACE로 복원
연장
----총연장 12km




  사업내용
----위치 : 제주시 동문교 ~ 제주항 구간
----기간 : 1997. 1. ~ 2002. 6. (2002. 7. 준공)
연장
----총연장 447m, 폭 21~36m


 



[광교부근 복원전]


[광교부근 복원후 가상 조감도]


[동대문구역 복원전]


[동대문구역 복원후 가상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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